글 배영태 한살림연합 상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2.6%라는 사상 최악의 식량자급률을 기록했다. 일 년 전에 비해 5%나 낮아진 수치다. 자급률 100%를 자랑하던 쌀마저 83%로 곤두박질쳤다. 재배면적이 줄고 수확량이 감소한 탓이다.
국내 식량자급률이 이 지경인 요즘 국제곡물가격은 연일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중서부 지방의 가뭄과 고온현상으로 옥수수의 가격이 2012년 6월, 톤당 280달러에서 8월, 400달러로 40%가 넘게 폭등했다. 지구촌 곳곳이 이상기후로 신음하고 있어 밀과 대두박 역시 30%이상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이쯤 되면 식량대란으로 폭동과 유혈사태가 빈번했던 2008년도 곡물파동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국제곡물가격의 가파른 상승은 빵이나 과자 등 곡물 관련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업체마다 줄줄이 관련 물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 국제곡물가격 여파가 본격화되는 내년 초에는 그 영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곡물가격이 요동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 축산현장은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료가격이 10% 이상 오르고 있는데도 축산물 가격은 연일 하락중이다. 향후 그 차이는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돼지는 불과 넉 달 전의 절반 가격인 마리당 21만 원 정도에 출하되고 있다. 생산비의 70%에 불과한 시장가격 때문에 돼지 사육 농가들은 한 마리를 출하할 때 마다 약 10여만 원 정도 손해를 보고 있다. 돼지 가격 폭락의 가장 큰 원인은 구제역 이후 1000만 마리까지 무리하게 사육 규모를 늘린 탓에 적정 사육 규모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불황에 따라 소비량이 감소했고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30여만 톤의 무관세 수입산 돼지고기도 타격을 주었다.
사료곡물을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제곡물가격이 들썩일 때마다 축산물 가격이 요동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돼지는 생산비 중 사료비가 50% 정도를 차지한다. 사료비는 계속 상승하는데 시장가격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니 농가들의 한숨과 탄식은 커져만 간다. 현재와 같은 곡물가격의 고공행진이 계속된다면, 모든 축산 농가는 도산하고 우리나라 축산 기반은 송두리째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한살림은 일찍이 우리나라 축산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바로 잡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농가에는 적정 생산비를 보장해주고 안정적인 소비가 가능하도록 사육 규모를 협의·조정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소비자 생산자간의 직거래를 통해 유통비용도 대폭 줄여왔다. 지역별로 송아지나 어린 돼지의 생산기반을 다지고 농업부산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료 체계도 만들어가고 있다.
한살림은 특히, 수입곡물사료에 의존하는 현재의 축산방식을 전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그 수가 많지 않지만 100% 국내산 사료로 소를 키우는 ‘국산사료한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얼마 전부터 ‘우리보리살림협동조합’을 만들어 수입곡물사료를 국산 보리사료로 대체하는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전북지역의 200여 농가가 참여, 약 400㏊에서 1800여 톤의 보리를 생산하고 돼지 사료 배합량의 20%를 이 보리로 전환하는 운동이다. 내년부터는 우리보리를 먹고 자란 돼지고기가 본격적으로 조합원에게 공급될 예정이다.
한살림에서는 우리 땅에서 난 안전한 농축수산물과 이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만을 생산,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축산사료만큼은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를 탈피하지 못했었다. 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겠지만, 축산물은 농가별 농업소득의 16%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것이 현실이다. 축산물의 안정적인 생산과 소비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최악의 식량자급률과 곡물가격 폭등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식량자급만큼 절박한 과제는 없다. 가장 윤리적인 생산과 소비는 제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리는 일이다. 한살림이 축산사료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매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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