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새로 들어설 정부는 5천만 국민의 70%를 중산층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이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시장개방을 더 확대하고 수출대기업을 더 육성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농업과 먹을거리를 해외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고, 사회적 격차는 더 벌어지며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 타결, 1998년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된 FTA 등으로 지난 20년간 우리 농업·먹을거리 개방은 계속 확대되어 왔다. 새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이런 개방정책을 지속한다면 박근혜 당선인이 표방한 ‘국민행복시대’는 열리기 어려울 것이다. 개방정책으로 밥상과 생산현장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먹을거리 안전과 국민 건강과 생명에 대한 위협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로는 국민행복도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새 정부는 ‘불량식품’을 4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불량식품’ 근절을 통한 먹을거리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진짜 불량식품’을 근절하자면 농업·먹을거리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농업·먹을거리를 해외에 더 많이 의존하면 할수록 유전자조작이나 공장형 축산, 방사능 오염, 농약과 항생물질로 뒤범벅이 된 ‘진짜 불량식품’의 수입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새 정부는 기후재앙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지구적 먹을거리 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국내 먹을거리 생산체계를 구축하는데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 20년에 걸친 개방정책의 ‘불편한 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농업·먹을거리 정책 기조를 다시 세워야 한다. 무너진 농업·먹을거리의 근본을 바로 세우지 않고 폐허가 된 빈 들에 세우는 새 정부의 국민행복시대, 행복한 농어촌 만들기, 불량식품 근절은 시간과 자원만 낭비하는 공약(空約)이 될 뿐이다.
현재 우리 국민은 먹을거리의 무려 77.4%를 해외에 의존한 채 먹을거리 주권이 확보되지 않은 불안한 나라에 살고 있다. 모든 국민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소비할 권리가 있다. 새 정부는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 먹을거리 기본법’과 ‘국가 먹을거리 계획’을 수립해 안전한 먹을거리 공급능력을 확대하고, 국민 모두가 질 좋은 먹을거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쌀, 보리, 밀, 콩 등 국민기초식량 수매제 실시, 유기농업으로의 과감한 정책기조 전환, 유기농식품의 틈새 아닌 주류 시장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까워지는 지역 먹을거리 체계 확대,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에 대한 보편적인 먹을거리 지원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가 쟁점이 되었다. 그만큼 사회적 격차(양극화)가 확대되고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새 정부도 경제민주화를 표방하고 정책 실천 의지를 나타내고 있지만,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재벌을 규제하는 제도를 만든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경제민주화는 시민들이 다양한 협동조합을 스스로 만들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할 때 실현가능성이 높아진다. 협동조합은 ‘경제민주화’라는 시대 바람을 타고 새로운 사회경제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불어 닥친 협동조합 열기는 올 들어서도 식지 않고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협동조합의 정신과 목적을 왜곡한 유사 협동조합도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는 다양한 영역에서 건전한 협동조합이 설립되어 시장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했으면 한다. 건전한 협동조합이 많이 태동, 성장하면 할수록 새 정부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도 앞당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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