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요섭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숨겨진 진실’입니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통령선거가 진행 중인 2012년 12월,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생명위기의 징후 중 하나일 뿐입니다. 농민들이 절감하고 있듯이 기후변화는 이미 ‘붕괴’ 수준입니다. 2017년이 되면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의 기온이 2도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지구상의 생물종 1/3이 멸종하며, 남아프리카와 지중해 등에서 물 공급의 1/3이 줄어들고, 5억 명 이상이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해수면이 7미터 상승하고, 아마존이 사막화하며, 해양생태계의 절반이 위태롭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세계는 이미 사실상 경제공황 상태입니다. 일본을 보면 한국경제의 미래가 보입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디플레이션(총체적인 경제규모의 수축)이 일본을 지배하면서 1989년 4만에 육박하던 주식지수가 2012년 가을 8천 대로 반의 반 토막(1/4)이 되었습니다. 가구의 평균 소득도 1994년 664만 엔이었던 것이 2010년엔 538만 엔까지 떨어졌습니다. 30년 전 수준으로 뒷걸음질 친 셈입니다. 대출금리가 1%에 불과한데도 돈을 빌리는 사람이 없고, 정기예금의 금리는 연 0.03~0.04%에 불과한데도 돈이 계속 몰립니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집값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재테크(財テク)’라는 말조차 이미 ‘죽은 말’이 되어 20대는 물론 30~40대도 뜻 자체를 모른다고 합니다.
요약하면 ‘기후붕괴 시대’와 ‘제로성장 시대’, 우리는 지금 산업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치명적인 생명위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쪽에선 학교성적과 부동산부채 때문에 몸을 던지고, 다른 한쪽에선 빈곤과 소외 때문에 목숨을 건 농성을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들의 “민생경제”, “복지국가” 이야기 속에선 이 시대의 본질적 문제와 진실의 실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후붕괴와 제로성장은 서로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기후붕괴를 늦추기 위해선 ‘제로성장’이 불가피할지도 모릅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신체의 성장보다 친구 관계와 자아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한성장경제가 오히려 비정상이며 이제는 ‘정상계의 경제(Steady State Economy)’로 가야할 때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탈(脫)성장 성숙사회’로의 전환 말입니다.
지구생태계와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지속 불가능’ 합니다. 다른 선택지가 필요합니다. 삶의 전환을 결단하고 새로운 문명과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탐색해야 합니다. 이미 새로운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질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 인격과 영혼의 성숙을 열망하는 사람들(영성), 생태계의 일부라는 각성 속에 농촌에서 새 삶을 시작한 사람들(생태), 권위주의와 가부장적 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일구는 청년들(새 공동체) 등등. ‘생명정치’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2012년 12월, 삶의 근본자리를 되물어야 할 때입니다.
* 사족: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합니다. 의무와 당위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말입니다. 1년에 한 번 생일상 마주하듯, 혹은 제사상 차리듯 투표장에 나가야 합니다. 가끔은 불편하기도 하지만, 거리의 선거홍보물도 TV 속 후보자들의 정책토론도 우리 생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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