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지역 야생초와 산열매로
정성껏 만든 발효음료
아침마다 조합원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며 만듭니다
강문필·최정화 방주명가영농조합 생산자 부부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랑, 기쁨 같은 좋은 말을 들으면 물 결정이 아름답게 변하고 죽음, 고통 같은 말을 들으면 추하게 일그러진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없다 논란이 있지만 좋은 말을 들으면 만물이 행복해 진다는 말은 굳이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한살림에는 조합원의 행복을 기원하며 씨 뿌리고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들이 많다. 강문필 최정화 방주명가영농조합 생산자 부부도 그렇다.
해발 600m, 경북 울진군 서면 쌍전리. 방주명가영농조합의 일과는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툭하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한겨울에도 강문필 최정화 부부와 12명의 생산자들은 어김없이 둘러 앉아 한살림 조합원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경건한 시간’을 갖는다. 이들이 만드는 간장, 된장, 발효음료(기존 효소류)가 익어가는 항아리들에는 ‘사랑해요. 행복해요’ 같은 축원의 말들이 빠짐없이 적혀있다. 항아리뚜껑을 열고 이 글귀를 읽자니 비추는 햇살과 손등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도 어쩐지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지금은 간장과 된장, 발효음료, 솔잎가루 같은 가공물품만 내고 있지만 이들 부부는 1988년부터 한살림에 유기농 고추를 공급해왔었다. 유기농이라는 말이 생소하던 무렵부터 이를 실천해온 오래된 생산자인 것이다. ‘미친놈’ 소리까지 들으면서 농사를 짓던 그 무렵, 농부를 존중해주고 심지어 고맙다고 눈물까지 흘리는 한살림 조합원들을 만난 것은 엄청난 감동이었다. 이 힘이 방주명가영농조합을 지금까지 밀고 왔다. 이들이 만드는 모든 물품에는 여전히 농약 없이 우리 땅에서 자란 것들만 원재료로 쓰인다.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얻기 어려운 귀한 재료도 많다. 산골과채, 산골솔잎, 산골인진쑥 같은 발효음료의 원재료(산머루, 산죽, 돌배, 솔잎, 인진쑥 등)는 대부분 인근 통고산 일대나 이 농장 주변에서 자연 채취하거나 자연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기른 것들이다. 주변에 공장 같은 오염원이 없고 적송이 울창한 삼림이 우거져 있고 서면지역 농가 대부분이 유기농을 하기 때문에 채취하는 야생초와 산열매들이 청정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원료들을 일체의 화학첨가물 없이 유기농설탕을 섞어 항아리에서 햇살과 바람, 눈비를 맞추며 1년 동안 발효 숙성시킨다.
이들이 만드는 물품들은 청정한 울진 산골의 자연이 준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발효음료를 설명하는 생산자 부부의 얼굴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작년 가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발효음료(기존 효소류)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미친 여파가 생각보다 심각했기 때문이다. 발효음료의 성분 등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눈여겨볼 부분이 있었지만 방송은 마치 발효음료들이 모두 불량 설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안타까웠다. 워낙 자극적인 고발 성향의 내용이 많았기에 방주명가도 덩달아 피해를 입어 공급량이 작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한다.
방송에서 지적한 대로 발효음료들이 ‘효소’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한다. 방주명가는 한살림 초창기인 1990년부터 ‘산골솔잎’이라는 이름으로 발효음료를 공급해왔다. 뒤 이어 공급한 ‘산골과채’, ‘산골인진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조합원들로부터 ‘이 물품이 무엇이냐, 효소냐?’ 하는 문의가 이어졌다. 시중에서 설탕으로 발효시킨 음료를 통칭 ‘효소’라 부르고 있었기에 설명을 줄이기 위해 ‘산골솔잎효소’ 식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한살림에서는 물품 라벨이나 장보기 사이트에 제품 유형을 ‘액상차’로 표기해왔다. 오해가 없도록 이르면 2월 말부터 효소란 이름을 다시 빼고 공급하기로 했다. 방주명가에서는 작년 말 대학 식품과학연구소에 산골과채에 대한 성분 검사를 의뢰했다. 방송의 주장과 달리 방주명가의 물품에서는 발효를 입증하는 생균과 노화 억제를 하는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등이 검출되었다. 4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와 생산을 함께 하고 있는 아들 강형국 생산자는 시중의 발효음료들이 정제당을 과하게 쓰는 데 비해 방주명가에서는 유기농설탕으로 당 함량을 낮추고 깨끗한 재료로 청정한 환경에서 정성껏 만들어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검사결과를 받고 조금 안도했다고 했다. 방송은 또 과일껍질 등 비위생적인 재료가 섞여있는 시중업체를 고발했다. 그러나 금강송으로 유명한 소광리와 산자락이 이어져 있는 낙동정맥, 해발 600미터 산골에 있는 방주명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었다. 성분 검사에서도 당연히 대장균과 살모넬라균 등 해로운 성분은 일절 검출되지 않았다.
방송은 또한 발효음료들에 설탕이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돼 있는 것은 ‘설탕물’이나 다름없다고 단정지었다. 이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은 우리가 매일 먹는밥도 몸 안에서 포도당으로 분해돼 에너지원이 되는데 그렇다면 밥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반문을 한다. 포도당과 설탕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발효음료는 애초에 약으로 공급한 게 아니었다. 인공향료 등 화학첨가물 뒤범벅인 시중의 음료수를 대신 마실 수 있는 자연에서 온 재료로 만든 음료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공급해온 것이다. 또한, 5배 정도의 물에, 기호에 따라서는 더 묽게 희석해 드시면 된다고 처음부터 안내해 왔었다. 3년 전부터는 설탕도 유기농으로 바꿨다. “처음 유기농을 시작했던 때처럼 더 철저히 원칙을 지켜야지요. 이번 일이 오히려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부부는 닥쳐온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방주명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산골솔잎 발효음료를 만들었을 때, 대기업에서 자신들과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량납품을 하면 원칙을 지킬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 최근에도 백화점 구매 담당자들이 찾아와 거래를 권했지만 이 역시 거절했다. 처음부터 큰 돈 벌자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한살림 생산자로서, 손주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로 정직하게 사는 일, 물품을 통해 한살림 조합원들을 만나고 그들이 자신들의 물품을 통해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건강해지기만을 바랄 뿐 다른 욕심이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그저 이 마음, 조합원들이 알아주면 좋겠네요.” 쑥스럽게 꺼낸 부부의 마지막 인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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