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살리는 비누, 자연에서 얻은 것을 다시 자연으로
글·사진 정미희 편집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놓인 것이 없었다. 건물 외부 곳곳에 심어진 과실수, 직원들의 먹을거리를 키우는 논과 밭, 물품 생산 시 발생하는 물과 생활하수를 정화하기 위한 실내 온실과 연못, 1차 생산지에나 있을 법한 생태화장실, 직접 키운 작물과 한살림 물품으로 차린 점심…. 모든 것들이 그 안에서 순환을 이루며 ‘물살림’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놓여있었다. “이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들이 물살림의 가치를 말해줍니다. 일하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환경이 모두 물품에 담기는 것이니까요.” 물 살리기는 자신이 꼭 해야하는 일이라고 거듭 말하는, 물살림 대표 박노수 생산자를 만났다.
물살림 입구에는 ‘절로그럼’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암호 같은 네 글자에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연(自然)이 품은 뜻인 ‘스스로 그러하다, 저절로 그러하다’를 순우리말로 풀어낸 겁니다. 물살림이 생산한 물품이 쓰이는 곳마다 본래의 아름다움을 찾고, 쓰인 후에는 다시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죠.” 물살림이 한살림에 내고 있는 화장품류와 몸을 씻는 비누류, 집안 곳곳을 청결하게 해주는 세정제류 등은 모두 이런 생각으로 만들었다.
박노수 생산자는 1980년대 충북 영동 옥계리로 귀농했을 때 맺은 인연으로 1991년 한살림과 함께 국내 최초로 폐식용유를 재활용한 세탁용가루비누를 개발하여 보급했다. 땅 살리기만큼 중요한 물 살리기에 함께 나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로 주부들 사이에서 폐식용유를 재활용한 세탁용고체비누가 인기를 끌었는데, 가정 내 세탁기 보급이 보편화하며 이를 세탁기용 가루비누로 만들자는 조합원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폐식용유를 그냥 버리면 물 정화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물과 수산화나트륨을 첨가해 비누를 만들어 재활용하면 24시간 이내에 물과 탄산가스로 분해되어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초기의 호응도 잠시, 꾸준한 물품의 재구매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세탁 시간이 긴 세탁기 속에서 폐식용유에 흡착되어 있던 음식 냄새가 빨랫감에 배는 등 물품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탁용가루비누 생산을 중단하고 재활용 세탁고체비누 설비를 마련해 물품을 생산했다. 한살림과 한국여성민우회생협(현 행복중심생협) 조합원들이 폐식용유를 공급실무자에게 보내면, 1~2주일 만에 비누로 만들어져 다시 조합원들 가정으로 돌아왔다. 직접적인 수질 오염을 막을 뿐 아니라 합성세제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자 산업자원으로 평가받아 1993년 비누 부문에서는 국내 최초로 환경마크를 획득했고, 1995년에는 환경부장관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사업을 ‘지역 물살림운동’으로 전환해 물품은 생산하지 않고, 소형비누제조기를 만들어 관공서와 여러 단체 등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발생한 폐식용유를 지역주민이 지역 내에서 소비하자는 취지였다. 1998년까지 450여대의 비누제조기를 보급하던 그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회사 설립 10주년 행사를 치른 다음날 급작스런 수해로 그동안 쌓아온 공장시설 등 생산기반이 모두 못 쓰게 되었다. 자금의 상당 부분을 시설에 투자한 상황에서 닥친 일이었다. 물살림은 그 이후 장기 불황과 악성 부채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절망 끝에서 다시 그를 일으켰던 것은 한살림 조합원을 비롯해 지역에서 물 살리기 운동을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어려운 고비마다 물살림을 살려준 사람들이 있었어요. 늘 그것에 보답하고,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하지요.” 2002년에는 한살림, 금호덴탈과 함께 수돗물 불소화 반대 운동의 결과물로 불소, 합성계면활성제, 합성방부제, 사카린을 뺀 치약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한살림, 바이오스펙트럼과 함께 최대한 인공첨가물을 배제하고 피부에 좋은 천연성분을 사용한 천연화장품을 개발해 한살림에 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물살림은 고정관념과 습관이라는 굳건한 벽과 싸우고 있다. 시중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거품이 덜 나고, 진한 향도 없는 물살림 비누와 세제에 대해 선호도가 떨어지는 변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석유계 합성계면활성제가 들어가는 합성세제는 거품이 많이 나 그만큼 물소비가 많고, 유해물질이 체내로 침투할 가능성도 높다. 물살림 물품들은 비누, 설탕, 아미노산, 코코넛 팜유를 원료로 사용한 천연계 계면활성제로 만들어 인체에 해가 없을 뿐 아니라 충분한 세척과 살균 효과를 갖췄다. 또 24시간 이내에 분해되어 환경에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나와 내 아이, 함께 살아가는 지구를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변화를 시도해볼 일이다.
요즘 물살림은 올 3월 공급될 새로운 샴푸 생산준비로 분주하다. 기존 제품의 성분을 개선하여 사용감을 높이고, 두피 타입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눠 공급하게 된다. 소비자 조합원들의 요청을 반영하여 모발의 부드러움을 위해 시중 샴푸에 첨가되는 ‘실리콘 에멀전’이라는 화학물질 대신 천연추출물로 유연성을 높였다. 오랜 시간 연구하고 고민해 만든 만큼 조합원들의 반응에 대한 기대가 크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꾸준히 가다 보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지요.” 20여 년 동안 차근차근 미래를 생각하며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온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사람, 박노수 생산자. 자연과 사람, 미래를 생각하며 그가 그려낸 길을 함께 걸어갈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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