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도근 상지대교수·무위당학교 교장
“기어라, 모셔라, 함께하라, 그리고 이루려하지 마라.” 이 말씀을 남기고 선생님 떠나신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치열한 현실 의 벽에 부닥칠수록, 그 말씀이 귓가에 울림처럼 더욱더 크게 들려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고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최근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놀라울 정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이명박 정부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본의 성장동력이 꺼지면서 심 각한 빈부격차, 청장년 실업증가, 자영업자의 몰락, 비정규직의 확대, 대형 건설프로 젝트의 파산, 금융시스템의 부도덕 등으로 사회의 깊은 상처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이런 경쟁과 돈 중심의 사회구조는 우리에게 잠시 물질의 풍요를 주었지만, 대신에 거칠고 비도덕적 행동,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생각, 치열한 논쟁과 갈등 등의 매우 불안한 삶을 남겨 놓았습니다. 늦었지만 이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 여러 지 역과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대안사회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협동의 실천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올해는 우리에게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지속해온 성장중심 경제체 제가 벽에 부딪치고 사회구조가 흔들리면서 가치관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우 리의 미래인 청년들은 기득권에 대항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행동할 것입니다. 이 제 새로운 대안사회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생명과 협 동의 삶을 사셨던 무위당 선생 20주기를 맞이했습니다. 또한 올해는 침략적 외래문 명에 대항해 우리민족의 정신적 가치와 삶을 지켜내려 했던 동학혁명 120주년 되는 해이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초의 협동조합인 영국의 로치 데일(Rochdale) 공정선구자조합이 설립된 지 1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지 금 우리는 확실히 새로운 ‘전환시대’ 앞에 놓여있습니다.
‘무위당 20주기’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선생을 추모하 고 기리는 선양사업을 이어왔다면, 이제는 선생의 사상과 삶을 따라 시대가 요구하 는 대로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의 생명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불안하 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사회에서 무위당의 사상과 삶을 새로운 등불로 삼을 수 있는 생명공동체운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젊은세대와 기성세대 모두에게 희망과 웃음을 주는 살아있는 생명운동, 한살림운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28년 전, 장일순 선생과 박재일 회장은 쉰이 넘는 나이에 제기동에서 '한살림농산' 이라는 조그만 쌀가게를 차려놓고 기뻐하며 건배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 어이가 없으면서도 몹시 부끄럽기도 합니다. 모두들 성공하기 어렵다고 충고하고, 고생길이 훤하다고 말리고, 민주화가 시급하니 길바닥으로 나오라고 해도 두 분은 묵 묵히 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희망의 씨앗 한 알을 땅에 심었습니다. 그 씨앗이 이제는 43만 세대가 참여한 거대한 한살림 공동체라는 큰 나무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외형은 비대해졌으나 갈등과 계산 때문에 정신적 가치와 생명사 상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먼저 가신 선생들의 삶과 우리들 의 삶이 전혀 다르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사회가 한계에 부딪친 것처럼 한살림 도 무위당의 생명협동사상을 삶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위해 우리도 그분들처럼 한 알의 밀알을 심었으면 합니다. 저에게 무위당 20주기는 선생을 추모하는 의미보다 그분의 삶과 사상을 실 천하며 새로운 길을 가는 전환점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1928~1994) 1960, 70년대, 지학순 가톨릭 원주교구 주교 등과 민 주화운동과 신용협동조합운동 사회개발운동을 이끌었다. 1980년대에는 ‘한살림농산’을 설립 한 박재일 등 도반들과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생명공동체를 위한 한살림운동 을 펼쳐 한살림의 정신적인 터전을 마련했다. 무위당 선생은 천주교 신자이면서 유학과 불교, 노장사상 등을 아우르며 해월 최시형 선생을 모범으로 삼았다. 서화에 뛰어나 사람의 얼굴을 담은 난 그림과 함께 도반들에게 써준 화제는 많은 이들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선생의 생각과 말 등을 후학들이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좁쌀 한 알》,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등으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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