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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살리는 말

<살리는 말> 한살림선언 조합원의 눈과 마음으로 다시 읽은 행복한 시간



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한살림연합 소식지 창간과 더불어 ‘살리는 말’을 연재하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한살림 안에서 자주 하고 듣던 익숙한 말들을 막상 조합원의 마음과 생각으로 풀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매번 소식지를 받아 볼 때마다 조금 더 잘 썼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미련이 남았지요.

풀어 쓴다면서 오히려 명료한 말을 제 나름의 해석과 모자란 능력으로 저녁 안개 자욱한 풍경처럼 흐려놓은 일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치 고쳐보겠다고 덧칠해서 처음에 무얼 그렸는지 모르게 된 그림처럼 말이지요. 평소에 제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후회하면서 한편으로는 자, 이제부터라도 잘 하자고 다짐 하는 일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채로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이 느끼셨을 답답함과 달리 제게는 보람있고 즐거운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오랜만에 『한살림 선언』을 다시 읽었고 언젠가 시간이 나면 읽으리라 하고 사 두었던 책들도 읽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 ‘무엇을 위해 이리 바쁜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는가’ ‘우리 가는 길의 끝이 어디여야 하는가’ 같은 좀처럼 하기 힘든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하루 벌어 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사람처럼 눈앞에 닥친 급한 일만 해결하느라 바빴던(혹은 그렇게 믿은) 제게는 선물 같은 시간이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공부가 이렇게 부족한데 어쩌자고 연재 제안을 받아들여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했고 생전의 우리 어머니가 제게 자주 해주신 “사람 몸 가운데 눈이 제일 게으르단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웃기도 했답니다.

사실, 그동안 『한살림 선언』은 우리에게 아주 귀하지만 자주 볼 수 없는 보물과 같은 존재였을지 모릅니다. 장롱 깊숙이 넣어 두고 내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 말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 보물을 가까이 두고 자꾸 어루만져 손때로 윤기가 돌게 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몸에 지녀 마치 나와 한 몸인 양 자연스러워야 한다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덧 우리 몸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스승들이 파괴와 죽임의 세계에서 모심과 살림으로, 생명과 평화로 새로운 길을 내었고 그 길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고 우리 삶으로 넓혀 모두가 걷는 길로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고 믿기도 합니다.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본래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비유로 곧잘 쓰이지요. 지금은 선언에 나오는 말을 풀어 쓰지만 우리 모두가 살리는 말을 나의 말로 자유자재로 쓰고 듣고 새롭게 만드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희망과 빛이 될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갈 것이라는 기대도 합니다.

이 작업을 통해 제가 자란 것처럼 여러분도 그러셨기를 감히 바랍니다. 그 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면 개편으로 살리는 말 연재는 이번 호에서 마무리합니다. 3년 넘게 한살림의 말들을 꼭꼭 씹어 생기있게 해석해 준 윤선주 이사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