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앞에서 '생활협동운동'을 설명할 때 다룬 공동체 운동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대략 다시 한 번 짚을까 합니다. 공동체의 시원을 찾아보면 자족적인 원시 공동체, 중세의 수도원 공동체를 떠올릴 수 있으나 현대사회의 모순과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출발한 공동체 운동은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한 청교도들이 건설한 종교적인 협동촌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푸리에, 영국의 로버트 오웬 등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이론이 정립되어 산업혁명시대의 기업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 수공업자의 협동촌 건설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기계의 등장으로 직업을 잃고 자본에 대항할 힘이 없어 비참한 삶을 살던 노동자, 수공업자들이 이러한 유토피아 사회주의를 자신들의 운동원리로 삼았던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자립과 자조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호의나 도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금을 모으고 필요한 물품의 생산과 소비를 책임지는 협동촌이야말로 핍박받는 이들의 이상향(理想鄕)이었겠지요. 협동촌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대신할 공동체 경제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생산과 소비, 분배와 교환에 평등과 상호부조의 원리를 적용했습니다. 또한, 가난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자립하고 연대하며 스스로 관리하는 사회에 대한 전망을 열어주며 19세기 전반기에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현실사회에서 고립되어 자기들만의 소우주를 지향하는 성격 때문에 점차 쇠퇴하고 19세기 중반 소멸하게 됩니다. 최소한의 자급자족 경제에 필요한 생산 노동력과 조직, 설비에 관한 기술 등의 기본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데다 산업혁명이 가져 온 대량생산과 소비의 거대한 파도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세례파인 아미쉬 공동체처럼 그 모든 어려움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종교공동체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현재까지도 살아남아 요즈음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생태공동체 운동의 본보기가 되고 있지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거센 물결 속에서 생활 전체를 자주관리와 상호부조를 통해 결합하려했던 협촌 건설이 좌절되면서 공동체 운동은 분야별, 기능별로 생활을 조직하는 양상을 띠게 됩니다. 로치데일 소비자협동조합을 시작으로 하는 이 흐름은 소비, 신용, 생산에 이어 요즈음에는 의료, 교육 등 고립된 개인들이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경제생활 일부를 협동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농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 '협동조합'의 명칭을 갖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흐름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경영시스템을 정착시키고 협동촌이 갖고 있던 일부 사람들만의 고립된 체계를 사회적 약자 일반에게 개방하면서 사회적으로 급속하게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공동사회의 전망을 잃어버리고 공동체를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보완하는 한 부분으로 전락시킨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공동체가 지닌 사회비판적 기능과 대안사회의 가능성을 함께 잃어버리게 됩니다.
*‘공동체 운동 약사’는 5회로 나뉘어서 실릴 예정입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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