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전통사회의 마을 공동체가 발달하였던 우리나라도 해방이후 산업화,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부터 공동체의 실험이 꾸준히 진행되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에 시작한 함석헌 선생의 씨알농장을 비롯해서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동광원, 예수원, 풀무원 등이 꾸준히 실험되고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들 공동체의 사회적 반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농협처럼 정부의 주도하에 설립된 조합과 달리 신용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등 생활인들이 민주적이고 자발적으로 조직한 공동체의 실험도 계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 천주교에서 시작한 신용협동조합은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도시나 농촌의 사회적 약자들이 고리대금의 피해를 벗어나 자신들의 힘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대단히 중요한 사회운동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군사독재에 맞선 정치민주화운동과 함께 경제민주화를 실현한 신용협동조합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능적 협동조합운동으로서 대단한 규모로 성장한 신용협동조합도 80년대 후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대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운동성은 상실한 채 사업만 남은 자본주의적 금융회사처럼 변합니다. 공동체운동이 삶 전체에 대한 전망을 세우지 못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기능적 협동조합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협동조합은 1970년대부터 회사나 단체의 공동구매를 통해 가격을 낮춘 구판장의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1980년대 들어서면서 지역사회의 요구와 맞물려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소비재의 공동구입를 통해 보다 싼 값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자리잡아가던 시절, 소규모의 협동조합들은 가격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개 구판장 형태로 운영되던 협동조합이 실패로 끝나고 대신 농업 회생을 목표로 등장한 한살림의 영향과 일본의 생활클럽 생협 등의 공동구입 시스템을 참고한 유기농산물 공동구입형 협동조합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985년 안양소비자협동조합(현재의 바른생협)과 원주소비자협동조합(현재의 한살림원주), 1986년 한살림농산이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유기농산물 공동구입형 협동조합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 무렵에 등장한 협동조합은 기능적 협동조합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환경문제 등 현대사회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삶을 개선할 방안을 고민하고 찾아내어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이전의 협동조합들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가졌습니다. 수질오염이나 생태환경 파괴 등 시대상황에 늘 마음을 열고 나의 일로 받아들여 대안적 삶을 창조하기 위한 활동을 모색하였고 사업적인 면에서도 안정적인 성장을 준비했습니다. 재고부담과 매장에 들어가는 고정투자비가 필요 없으며 도시에서 공동체가 가능한 공동구입형 조합은 우리 사회에 든든히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글을 쓴 윤선주 이사는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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