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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살리는 말

<살리는 말> 모심


살리는 말|모심과 살림 연구소에서 출간한 모심살림총서 3 <<살림의 말들>>에 수록된 말들을 되새기며 음미합니다.


글|윤선주 · 한살림연합 이사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과 함께 할 때 모신다고 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거나 선생님을 모시러 가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그런 예이지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딱히 상대가 나보다 더 나은 면이 없는데도 모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늘 그를 내 마음에 모시고 무엇을 하든지 그를 중심에 두고 삽니다. 맛난 음식을 먹을 때 옆에 없는 그가 생각나고 아름다운 풍경을 대할 때도 그가 옆에 없어 안타깝습니다. 문득 비 갠 뒤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를 보면서도 그가 함께 있다면 더 기쁠 거라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내 안에 너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아직 보지도 않고 만나지도 못한 누군가를 모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아기를 가진 엄마들입니다. 이제 막 아기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부터 아기 엄마들은 태어날 아기를 모십니다. 좋고 바른 생각을 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예쁜 사진으로 도배를 하면서 뱃속의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랍니다. 아기를 위해 즐기던 커피도 끊고 아무리 추워도 전자파가 아기에게 나쁘다고 전열기도 켜지 않은 채 겨울을 지내기도 합니다. 물론 앉는 자리, 먹는 음식도 바르고 정갈하게 고릅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지 늘 생각하고 어쩌다 혼자 집을 나서면 아이가 눈에 밟혀 마음이 바빠지기 일쑤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밤새 옆을 지키고 차라리 내가 아프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키워 준 은혜를 갚고 내가 한 것처럼 이렇게 모시리라고 믿어서 그럴까요?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 순간 오로지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자신 안에 품고, 낳고 키우는 모든 부모처럼 누군가를 모신다는 것은 그 근본은 사랑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가를 바라거나 우열을 가리지 않는, 그냥 있는 것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그 타고난 본성을 탓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모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아이 뿐 만 아니라 남의 아이, 세상의 모든 아이를 그렇게 바라보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각자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사람을 모시는 일인 것 같습니다. 내 아이, 내 가족을 뛰어넘듯이 사람을 넘어 우리와 함께 지구별에 깃든 모든 생명과 바위, 모래, 시냇물, 솔바람과 그늘까지도 그들이 제 자리에 잘 있도록 마음을 쓰는 일은 아마도 온 우주를 향한 극진한 모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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