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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창

다시 희망 속으로




글 김종우 한살림서울 남서지부장


올해 같이 긴 장마와 40여일이 넘게 날마다 내리는 빗속에서도 녹지 않고 씩씩하게 잘 자란 장한 채소와 과일을 비롯한 온갖 물품들을 오늘 잘 받았습니다. 상자 가득가득 담겨온 채소들로 나물반찬을 해서 먹을 생각에 신이 납니다. 이렇게 먹는 것만 좋아하다가 나중에 비석에 '먹다 죽다'로 기록되는 일이 생길까봐 두렵네요.

사실 너무 분주히 사느라 물품 주문하는 것을 깜빡 놓쳐서 2주 만에 공급을 받았습니다. 1주일 내내 식구들이 채소는 없느냐 과일은 없느냐 찾았지만 저는 공급을 못 받으면 안 먹고 말지 동네 가게는 기웃거리지 않거든요. 정말, 집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 먹고 오늘 공급을 받아서 먹을 것을 가득 냉장고에 채워 놓으니 생각만으로도 배부르고 감사합니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시중의 채소, 과일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서 모든 채소 앞에는 ‘금’자가 붙지만 한살림의 생산자들은 한 번 약정하면 그 가격을 고수해서 보내주셔서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 얼마나 송구한지 모르겠어요. 오랜 농사일에 몸이 상해서 겨우 움직이시는 어느 여성생산자께서 품삯을 아끼시느라 인부 줄이고 직접 몸으로 떼우시며, 아픈 다리를 오그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뻗고 앉아서 종자마늘을 다듬고 골라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여서 특별품 마늘을 받아도 콧날이 시큰하고, 채소를 받아도 더운 비가림막 하우스 속에서 얼마나 땀을 흘리셨을까를 생각하면 참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누가 그럽디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니 이제는 한살림도 안전하게 해외의 유기농 단지를 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니야?"

 농촌과 도시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운동인 우리의 농업살림, 생명살림을 살짝 주머니 속에 넣어 두고 당장 내 입에 좋은 것이 들어오는 것만을 안다면 무슨 생각인들 못하겠습니까? 부족하면 이웃과 나눠 먹고 넘치면 내 가족이 하나 더 먹고, 또 사서 이웃에게 선물도 하면서 한살림을 해온 우리가 아닙니까?

 선한 마음으로 한살림을 시작했지만 힘들게 일하는 다른 동료 생산자들 생각을 잠시 놓치는 바람에 일어난 물품혼입 사고를 바라보며 겉으로 드러난 상처 입은 한살림의 수면 아래에서는 그래도 얼마나 많은 정직한 생산자들이 오리의 물속 발놀림을 하고 계시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약 한 번 뿌리면 한결 쉬운 농사일을 힘들게 일일이 몸으로 부대끼시는 당신들을 상상만 해도 저는 어려워서 도망치고 싶습니다.

 콩 세알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땀으로 정직하게 일군 논밭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만으로도 당신들은 하나님의 동업자이십니다. 지난겨울 얼어 죽은 과일나무를 쓰다듬으며 가슴 아파 했을 당신들, 비로 떠내려간 논과 밭의 작물들을 애써 잊고 다시 삽을 들고 희망을 심으러 나서는 당신들의 성실하고 한결같은 마음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김종우 한살림서울 남서지부장

글을 쓴 김종우님은 1995년 10월 한살림에 가입하면서 한살림 활동을 시작. 광명시 지역의 한살림 활동을 강화시킨 장본인이다. 오랜 기간 한살림소개교육활동가 대표를 지냈고, 한살림서울 남서지부 준비위원장을 맡아 2008년 2월 남서지부를 창립해 현재까지 지부의 살림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