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이 뿔처럼
뾰족하게 생긴
뿔시금치
큰 산 북쪽 골짜기에 희끗희끗 눈이 남아 있고, 냇가 버드나무 가지가 시나브로 색을 더해가는 삼월이면 양지바른 돌담옆 시금치 밭이 기지개를 켠다. 겨우내 눈 속에서 추위를 이겨낸 단단한 모습으로….
내가 귀농했던 마을에도 어김없이 요맘때면 시금치 밭에 재를 뿌리고 텃밭을 돌보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시금치는 쪽파와 같이 텃밭의 필수작물인 셈이다. 특히, 뿔시금치는 추위에 잘 견디는 작물이어서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심어 김장철에 먹고, 남긴 것은 겨울을 나고 먹는다. 봄철 입맛을 채워주는 채소로 최고다. 중앙아시아에서 재배되던 것이 우리나라에는 조선 초쯤 전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금치는 씨앗 모양이 둥근 것과 각이 지고 뾰족한 것이 있는데 ‘뿔시금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씨앗이 뿔처럼 뾰족하고 잎 모양도 약간 길고 각이 진 걸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암수 딴 그루여서 꽃 필 시기가 되면 숫놈 시금치가 먼저 쭉 올라오면서 꽃가루를 날리고 암놈 시금치가 잎겨드랑이에 각진 씨앗 모양을 달고 있어 수정되면 이것이 여물어 뾰족한 씨앗이 된다.
봄이 무르익는 사월이 지나면 꽃대가 올라온다. 보통 그전에 먹거나 수정을 마친 숫놈 시금치만 골라 먹는다. 대궁 째로 살짝 데쳐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 뿌리는 꽃대가 올라오면 억세지기 때문에 그전에 뽑아 먹는다. 겨울을 난 시금치 뿌리는 불그레한 게 굉장히 달다. 주로 데쳐서 이용하는데 가끔은 생으로 겉절이를 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시금치에 들어있는 수산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양을 장기간 먹지 않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제철에 그저 맛있게 먹으면 된다.
작년 가을에는 고라니한테 뺏기지 않으려고 시금치를 가까운 밭에 심었다. 오고갈 때 입맛을 다시며 시금치가 조금 더 크기를 기다리고 있다.
글 박명의 충북 괴산 솔뫼농장 생산자 / 세밀화 박혜영 한살림서울 조합원
• 글을 쓴 박명의 생산자는 토박이씨앗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매해 농사지은 농작물의 씨앗을 손수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 세밀화를 그린 박혜영 조합원은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한 아이를 키우며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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