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농부에게
사랑 받는
추위에 강한 재래종 파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풀꽃들이 지천이다. 어느새 와 있는 봄을 맞이하듯, 기세 좋게 올라오는 파를 들여다보면 마치 길쭉한 풍선을 불어 놓은 것 같다. 지난겨울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파 농사는 기다림의 농사다. 씨를 뿌려 실같이 올라온 것을 옮겨 심고, 다른 농사에 신경 쓰다 보면 어느새 풀에 싸여 찾아보기 어렵게 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몇 번 풀 속에서 구해 주면 가을에 어느 정도 먹을 만큼 자란다. 겨우 김장에 쓰고 남겨 겨울을 나면, 그때는 정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씨를 뿌린 첫해만 잘 넘기면 두 해 째부터는 저절로 된다. 파 꽃을 수확해서 씨를 장만하고 그대로 두면 옆에서 다시 올라 온다. 그것도 여러 가닥으로…. 지난해 자라던 속도와도 다르게 자란다. 한 밭에 두고 몇 년을 먹게 되니 게으른 농부가 좋아할 일이다. 특히 재래종 파는 추위에 강한 것들이 많아서 쪽파와 함께 봄에 요긴하게 쓰인다. 살림 잘 하는 농부인지 텃밭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추, 쪽파, 파밭이 일 년을 지키고 있는지 보면 된다. 오월이면 기세 좋은 파 잎 끝에 방울방울 파 꽃이 달린다. 크고 작은 꽃들이 활짝 피면 불꽃놀이를 연상케 한다. 벌들도 무척 많이 날아든다.
음식을 하는데 부재료로 쓰이지만, 감기 기운이 있거나 몸의 활력이 떨어질 때, 배, 생강 등과 파 흰 부분과 뿌리를 푹 끓여 먹으면 한결 좋아진다. 잎은 비록 말라 있지만, 길고 실한 뿌리를 보면 겨울을 나기 위해 얼마나 깊이 뿌리 박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요즘은 파를 주재료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아직 못해 먹었는데 올해는 해 보련다.
생강나무 꽃 지며 진달래 흐드러진 봄날, 파 송송 썰어 넣은 시원한 바지락국 한 사발 먹고 기운 내야겠다.
글 박명의 충북 괴산 솔뫼농장 생산자 / 세밀화 박혜영 한살림서울 조합원
• 글을 쓴 박명의 생산자는 토박이씨앗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매해 농사지은 농작물의 씨앗을 손수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 세밀화를 그린 박혜영 조합원은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한 아이를 키우며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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