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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토박이 씨앗 이야기

토박이 씨앗을 심는 일, 함께 꿈을 펼치는 일

토박이씨앗을

심는 일,

함께 꿈을

펼치는 일

어릴 적 이맘 때, 뉘엿뉘엿 해지는 저녁 무렵이 되면 집집마다 군불 때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드름 사이로 보이는 처마 밑과 기둥에는 올망졸망 정성들여 매달아 놓은 씨앗들도 보였다. 씨앗을 사서 농사짓지 않았던 그때는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고 제일 실한 놈을 골라 내년 농사에 쓸 씨오쟁이(씨앗을 담아 두는 짚으로 엮은 물건)를 만드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성인이 되어 도시생활을 하다 귀농을 하게 되었다. 농사를 짓는데, 어릴 적에 보고 경험한 것을 하는 건 당연했다. 봄이 오면 씨앗을 챙기고 모자란 것은 이웃에게 받고 남는 것은 나눴다. 지난해 씨앗이 자라던 모습을 떠올리며 여기저기 심고 거뒀다. 15년이 지나니 해마다 갈무리한 씨앗이 꽤나 많아졌다.

이 토박이씨앗들은 각각의 사연을 안고 겨울이면 씨오쟁이에 담겨 한 방에 모인다. 짧게는 몇 십 년, 길게는 몇 천 년을 이 땅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겨우내 나누겠지?

토박이씨앗을 심는다는 건 이들이 지닌 많은 세월과 경험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따사로운 햇살과 가뭄, 홍수와 모진 태풍도 여러 해 겪어 우리와 달리 감기 따위에 대비해 예방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신의 면역력으로 어려움을 견디고 이 땅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토박이씨앗의 소중함을 느낀다. 주변에서 대규모 단일작물 재배를 하다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고 농부들이 해마다 사야하는 씨앗도 늘어가고 있다. GMO 농산물에 의해 우리 식탁이 위협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내 몸에 새겨진 농사의 근본을 지켜 나가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토박이씨앗이 가진 정보와 힘으로 계속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한살림 가족들과 나누려고 한다.

알알이 색색이, 함께 하자고, 꿈을 펼치자는 토박이씨앗들의 유혹을 들어보자.

박명의 충북 괴산 솔뫼농장 생산자 / 세밀화 박혜영 한살림서울 조합원


글을 쓴 박명의 생산자는 토박이씨앗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매해 농사지은 농작물의 씨앗을 손수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세밀화를 그린 박혜영 조합원은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한 아이를 키우며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