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토박이 씨앗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4.23 게으른 농부에게 사랑 받는 추위에 강한 재래종 파
  2. 2015.04.23 씨앗이 뿔처럼 뾰족하게 생긴 뿔시금치
  3. 2015.02.10 토박이 씨앗을 심는 일, 함께 꿈을 펼치는 일

게으른

농부에게

사랑 받는

추위에 강한 재래종 파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풀꽃들이 지천이다. 어느새 와 있는 봄을 맞이하듯, 기세 좋게 올라오는 파를 들여다보면 마치 길쭉한 풍선을 불어 놓은 것 같다. 지난겨울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파 농사는 기다림의 농사다. 씨를 뿌려 실같이 올라온 것을 옮겨 심고, 다른 농사에 신경 쓰다 보면 어느새 풀에 싸여 찾아보기 어렵게 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몇 번 풀 속에서 구해 주면 가을에 어느 정도 먹을 만큼 자란다. 겨우 김장에 쓰고 남겨 겨울을 나면, 그때는 정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씨를 뿌린 첫해만 잘 넘기면 두 해 째부터는 저절로 된다. 파 꽃을 수확해서 씨를 장만하고 그대로 두면 옆에서 다시 올라 온다. 그것도 여러 가닥으로…. 지난해 자라던 속도와도 다르게 자란다. 한 밭에 두고 몇 년을 먹게 되니 게으른 농부가 좋아할 일이다. 특히 재래종 파는 추위에 강한 것들이 많아서 쪽파와 함께 봄에 요긴하게 쓰인다. 살림 잘 하는 농부인지 텃밭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추, 쪽파, 파밭이 일 년을 지키고 있는지 보면 된다. 오월이면 기세 좋은 파 잎 끝에 방울방울 파 꽃이 달린다. 크고 작은 꽃들이 활짝 피면 불꽃놀이를 연상케 한다. 벌들도 무척 많이 날아든다.

음식을 하는데 부재료로 쓰이지만, 감기 기운이 있거나 몸의 활력이 떨어질 때, 배, 생강 등과 파 흰 부분과 뿌리를 푹 끓여 먹으면 한결 좋아진다. 잎은 비록 말라 있지만, 길고 실한 뿌리를 보면 겨울을 나기 위해 얼마나 깊이 뿌리 박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요즘은 파를 주재료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아직 못해 먹었는데 올해는 해 보련다.

생강나무 꽃 지며 진달래 흐드러진 봄날, 파 송송 썰어 넣은 시원한 바지락국 한 사발 먹고 기운 내야겠다.

박명의 충북 괴산 솔뫼농장 생산자 / 세밀화 박혜영 한살림서울 조합원

• 글을 쓴 박명의 생산자는 토박이씨앗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매해 농사지은 농작물의 씨앗을 손수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 세밀화를 그린 박혜영 조합원은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한 아이를 키우며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씨앗이 뿔처럼

뾰족하게 생긴

뿔시금치



큰 산 북쪽 골짜기에 희끗희끗 눈이 남아 있고, 냇가 버드나무 가지가 시나브로 색을 더해가는 삼월이면 양지바른 돌담옆 시금치 밭이 기지개를 켠다. 겨우내 눈 속에서 추위를 이겨낸 단단한 모습으로….

내가 귀농했던 마을에도 어김없이 요맘때면 시금치 밭에 재를 뿌리고 텃밭을 돌보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시금치는 쪽파와 같이 텃밭의 필수작물인 셈이다. 특히, 뿔시금치는 추위에 잘 견디는 작물이어서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심어 김장철에 먹고, 남긴 것은 겨울을 나고 먹는다. 봄철 입맛을 채워주는 채소로 최고다. 중앙아시아에서 재배되던 것이 우리나라에는 조선 초쯤 전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금치는 씨앗 모양이 둥근 것과 각이 지고 뾰족한 것이 있는데 ‘뿔시금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씨앗이 뿔처럼 뾰족하고 잎 모양도 약간 길고 각이 진 걸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암수 딴 그루여서 꽃 필 시기가 되면 숫놈 시금치가 먼저 쭉 올라오면서 꽃가루를 날리고 암놈 시금치가 잎겨드랑이에 각진 씨앗 모양을 달고 있어 수정되면 이것이 여물어 뾰족한 씨앗이 된다.

봄이 무르익는 사월이 지나면 꽃대가 올라온다. 보통 그전에 먹거나 수정을 마친 숫놈 시금치만 골라 먹는다. 대궁 째로 살짝 데쳐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 뿌리는 꽃대가 올라오면 억세지기 때문에 그전에 뽑아 먹는다. 겨울을 난 시금치 뿌리는 불그레한 게 굉장히 달다. 주로 데쳐서 이용하는데 가끔은 생으로 겉절이를 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시금치에 들어있는 수산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양을 장기간 먹지 않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제철에 그저 맛있게 먹으면 된다.

작년 가을에는 고라니한테 뺏기지 않으려고 시금치를 가까운 밭에 심었다. 오고갈 때 입맛을 다시며 시금치가 조금 더 크기를 기다리고 있다.

박명의 충북 괴산 솔뫼농장 생산자 / 세밀화 박혜영 한살림서울 조합원

• 글을 쓴 박명의 생산자는 토박이씨앗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매해 농사지은 농작물의 씨앗을 손수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 세밀화를 그린 박혜영 조합원은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한 아이를 키우며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

토박이씨앗을

심는 일,

함께 꿈을

펼치는 일

어릴 적 이맘 때, 뉘엿뉘엿 해지는 저녁 무렵이 되면 집집마다 군불 때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드름 사이로 보이는 처마 밑과 기둥에는 올망졸망 정성들여 매달아 놓은 씨앗들도 보였다. 씨앗을 사서 농사짓지 않았던 그때는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고 제일 실한 놈을 골라 내년 농사에 쓸 씨오쟁이(씨앗을 담아 두는 짚으로 엮은 물건)를 만드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성인이 되어 도시생활을 하다 귀농을 하게 되었다. 농사를 짓는데, 어릴 적에 보고 경험한 것을 하는 건 당연했다. 봄이 오면 씨앗을 챙기고 모자란 것은 이웃에게 받고 남는 것은 나눴다. 지난해 씨앗이 자라던 모습을 떠올리며 여기저기 심고 거뒀다. 15년이 지나니 해마다 갈무리한 씨앗이 꽤나 많아졌다.

이 토박이씨앗들은 각각의 사연을 안고 겨울이면 씨오쟁이에 담겨 한 방에 모인다. 짧게는 몇 십 년, 길게는 몇 천 년을 이 땅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겨우내 나누겠지?

토박이씨앗을 심는다는 건 이들이 지닌 많은 세월과 경험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따사로운 햇살과 가뭄, 홍수와 모진 태풍도 여러 해 겪어 우리와 달리 감기 따위에 대비해 예방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신의 면역력으로 어려움을 견디고 이 땅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토박이씨앗의 소중함을 느낀다. 주변에서 대규모 단일작물 재배를 하다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고 농부들이 해마다 사야하는 씨앗도 늘어가고 있다. GMO 농산물에 의해 우리 식탁이 위협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내 몸에 새겨진 농사의 근본을 지켜 나가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토박이씨앗이 가진 정보와 힘으로 계속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한살림 가족들과 나누려고 한다.

알알이 색색이, 함께 하자고, 꿈을 펼치자는 토박이씨앗들의 유혹을 들어보자.

박명의 충북 괴산 솔뫼농장 생산자 / 세밀화 박혜영 한살림서울 조합원


글을 쓴 박명의 생산자는 토박이씨앗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매해 농사지은 농작물의 씨앗을 손수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세밀화를 그린 박혜영 조합원은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한 아이를 키우며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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