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효숙 한살림고양파주 상무이사
오늘도 우리는 한살림을 하고 있다. 생명을 모시고 살리는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현실에 안주하는 마음이 들거나 앞길이 막혔다 싶어 막막할 때면 생명살림의 길을 개척한 인농(仁農)박재일 선생님의 뜻과 삶을 떠올리곤 한다.
한살림운동은 출발 당시에 이미, 피폐해가던 농촌의 문제들을 생명·협동운동의 방식으로 풀어보자고 기획하고 시작한 운동이었다. 선생님은 강원도 원주 지역을 중심으로 농촌마을의 협동·자조운동을 펼치다가 전국 가톨릭농민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의 농업과 먹을거리, 환경문제를 근본적 해결할 방안을 모색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스승인 장일순 선생님을 통해 생명운동과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켰고 생산자와 소비자, 농촌과 도시가 생명의 먹을거리를 나누며 공생하는 한살림운동을 착안하게 된다.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문제를 직시하며 대안을 찾고자 했던 운동가 박재일이 있었기에 한살림운동은 싹을 틔우고 뿌리내릴 수 있었다.
이 땅에 전혀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었다
한살림이 시작한 직거래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얼굴이 보이는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살리는 일이다. “시장에서의 인간관계는 모두 팔고 사는 관계뿐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는 경제적인 관계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가 충돌합니다. 이렇게 대립적인 관계로는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밥상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하나라는 관점에서 도시와 농촌이 연대하여 밥상과 농업, 생태계를 살리는 활동을 해야 하는 거지요. 그것이 한살림을 통해 하려는 일입니다.” 선생님은 한살림운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제가치보다 생명가치, 사람가치를 우선시하자는 이 말씀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한살림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은 이제 우리 사회 전체의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미국의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사례분석을 통한 연구에서 미국의 성공한 11개 기업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밝힌 바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야망, 재능, 혁신능력, 끈기, 영감, 근면 같은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들인, 겸양, 신념, 의지의 리더십 등이었다. 한살림을 열고 이끌어온 선생님은 선배 운동가이기도 했지만 바로 그러한 리더십의 전형이었다고 여겨진다. 한순간도 우리 농업과 밥상이 마주하고 있는 절절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이 땅에 이전에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살림운동을 연 운동가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늘 겸손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생산자·실무자·소비자를 다독이면서 운동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고 주체로 서도록 동기를 부여한 리더이기도 했다.
살아온 삶만큼이나 한없이 뜨겁던 이태 전 여름날, 참되게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맑고 따뜻한 눈빛으로 "한살림을 해서 행복했다, 한살림은 재미있게 하는 거야" 이 말씀을 속삭이고 선생님은 떠나셨다. 생명을 모시고 살리는 일이 행복했던 선생님! 우리도 그 모습을 닮아 어느 덧 가뭄이 되면 생산자를 걱정하고 원전사고와 기아로 고통 받는 지구촌 식구들도 걱정하며 더워지는 지구를 위해 전기플러그를 뽑는다. 생명살림의 가치와 협동의 정신은 한살림 가족들에게 깊이 새겨져 이웃과 지역사회로 향하고 있으니 선생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는 것과 진배없다. 차분히 내 마음을 바라본다. ‘나도 한살림하는 것이 행복하다’
글을 쓴 최효숙님은 대학시절 한살림 생산지인 공근으로 농활을 간 일이 계기가 되어 한살림실무자가 되었고 회계, 조직활동, 매장사업, 구매관리, 기획업무를 거쳐 2011년 부터 한살림고양파주 상무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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