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창
한살림 안에서 먹고 배우고 살아갑니다
글 박혜영 한살림서울 남부지부 사무국장
30대 중반, 지금은 군 복무 중인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고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책을 통해 한살림을 만났다. 매주 집으로 공급되는 물품으로 낯선 밥상을 차리고 소식지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조금씩 한살림에 대해 알아갔다.
화학첨가물 없이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맛에 길이 들고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전통의 맛 또한 알게 되면서 가급적 한살림 물품으로 밥상을 차리고 간식 또한 직접 만들었다. 우리네 어르신들이 먹었던 대로, 계절에 맞게 먹으면 그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가까운 곳에 한살림 매장이 없어 일주일에 한 번 공급되는 물품으로 밥상을 차렸다. 그러다 보니 공급일이 가까워 오면 냉장고에 있는 모든 재료들을 꼼꼼히 찾아 쓰는 알뜰함을 얻게 되었다.
한살림 물품으로 차려낸 밥상이 아이들의 몸을 키웠고 단오잔치, 딸기따기 체험, 메뚜기 잡기, 대보름행사 등의 생산지 방문과 생태놀이, 생명학교는 아이들의 마음과 정서가 따뜻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었다.
조합원 모임과 한살림 활동들이 쌓여갔다. 그 과정 속에 관계의 그물을 짜고 함께 배우고 익혔던 시간들은 살림과 육아에 서툴렀던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들을 올바로 정립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품을 보면서 생산자의 얼굴과 생산지의 풍경을 볼 수 있었고, 가까이 사는 이웃과 함께 일상의 행복을 맛볼 수 있었으며, 타고난 아이의 결을 엄마의 욕심으로 왜곡하지 않게 애 쓸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한살림 안에서 우리 가족이 살아가다 보니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와 새로운 물품이 나올 때마다 옛 이야기를 주워섬기며 물품의 맛과 포장 상태, 디자인에 대한 품평을 한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반가웠던 물품은 샴푸였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는 비누의 장점과 합성계면활성제의 폐해를 아무리 설명해도 한살림 비누와 샴푸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린스가 필요 없을 정도로 머릿결을 부드럽게 해주는 ‘윤기품은 샴푸’가 나온 것이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물비누’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결했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제는 가공식품 종류도 다양해져서 퇴근이 늦어지거나 연수가 잦을 때, 남편도 아이들도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외식으로 만나는 맛집, 멋집들이 아무리 화려하고 폼 나더라도 한살림 물품으로 간단히 차려내는 ‘집밥’만은 못하다는 것을 우리 가족은 알고 있다.
매주 공급 받아 냉동실에 모셔진 오리양념불고기, 양념닭갈비 등의 가공식품을 해동하여 볶아 내고, 김치와 밑반찬 한두 가지, 따뜻한 밥 한 그릇이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최근 엄마의 손맛을 담아 만든 ‘녹두전’, ‘시래기된장국’, ‘건새우아욱국’은 바쁠 때 참으로 유용한 먹을거리다. 주말엔 면류를 주로 먹는다. 간단하게 조리하여 접시에 담아낸 스파게티와 샐러드 한 접시면 그것대로 소박하게 분위기 있고 거기에 ‘천연 발효종 피자’ 한 접시까지 보태면 나름 근사한 레스토랑 분위기가 난다.
어느 순간부터 원재료를 다듬는 과정부터 시작되는, 요리라 불리는 음식이 줄어들고 바로 해먹을 수 있는 반조리, 즉석식품을 선호하는 생활 패턴으로 변한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안심하고 간단하게 접할 수 있는 물품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한없이 고맙다.
한살림이 가르쳐 준대로 계절을 지키고 전통을 찾던 습관들이 남아 해마다 봄철이 되면 진달래를 따다가 화전을 만들고,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고, 보름이 되면 묵은 나물과 오곡밥 정도는 해먹는 것으로 작은 위로를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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