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속 달래준 콩나물 국밥
글 이은희 한살림서울 조합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메일을 여러 번 수정하고도 쉽사리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다시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직서를 제출했다. 시계는 어느새 새벽 다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밤새 영업을 한다는 콩나물국밥집이 떠올랐다. 출근하려면 늘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러려면 아침마다 서둘러야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아직 어둑어둑했다. 하지만 지금 나가지 않으면 시간이 빠듯할 터였다.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모자와 열쇠도 챙겼다. 밖은 조금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고 새벽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나는 반쯤만 올렸던 겉옷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걸음도 빨라졌다. 부지런히 걸은 덕분에 금세 골목을 빠져 나와 도로 가에 이르렀다. 불빛이 한두 개씩 보이고 사람들도 눈에 띠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콩나물국밥집이 있는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겉보기와 다르게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차림표를 힐끗 보았다. 주인은 혼자 왔냐고 물었을 뿐, 더 기다리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메뉴라고는 국밥과 모주뿐이었다.
처음 콩나물국밥을 먹어본 것은 전주에서였다. 차를 얻어 타다가 계획에도 없던 전주에 들리게 되었다. 전주에 마땅히 아는 식당도 없었고 그나마 가는 곳마다 문이 닫혀있거나 썰렁했다. 처음에는 관광책자에 나온 유명하다는 비빔밥집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런 집들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고 직원들은 무심했다. 혼자 앉아있기 멋쩍어 그대로 나왔다. 안 그래도 배고프고 힘들었던 터라 기분이 울적했다. 나는 다시 전주 거리를 헤매다가 충동적으로 콩나물국밥집에 들어갔다. 아마 관광책자 어디쯤에서 비빔밥과 나란히 소개된 전주의 콩나물국밥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넓은 가게 안은 비빔밥집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빼곡히 차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시끄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어리벙벙하게 서 있다가 빈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묻지도 않고 음식이 차려졌다. 반찬 몇 개와 김 한 봉지, 콩나물국밥 그리고 반숙된 달걀이 담긴 스테인리스 밥그릇이었다. 나는 더 당혹스러워졌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음식을 내온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처음 먹어보나 봐?”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웃으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김을 찢었다. 자잘하게 찢은 김을 달걀이 담긴 그릇에 담고 국물도 몇 수저 떠 넣었다. 그리고는 착착 비벼 내게 건넸다. 노른자가 덜 익어 국물이 노랬다. 그릇을 받아 들면서도 이걸 먹어야 할지 난감했다. 친절하게 설명해준 아주머니가 보고 있는데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애써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그런데 웬걸, 너무 맛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주머니는 거 봐, 맛있지? 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맛있게 먹으라며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나는 순식간에 국물도 남기지 않고 한 그릇 비워냈다. 정말 맛있었다. 낯선 도시를 헤매던 수고를 충분히 보상받은 것 같았다.
기대와 추억이 뒤섞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동네에서 유명한 집이라던 콩나물국밥집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금 아쉬웠다. 전주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서울에 돌아와서 몇 번 더 콩나물국밥을 먹어봤지만 도통 그 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추억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양념이 아닐까 싶다. 나를 위로하던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오늘따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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