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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물품 써보니 어때요?/독자가 쓰는 사연

[잊히지 않는 밥 한 그릇] 밥 한 알에 담겨 있는 위대한 유산

밥 한 알에 담겨 있는 위대한 유산


문순요 한살림경기남부 조합원

 

저는 1950년대 말에 태어나 1965년 극심한 가뭄으로 굶주린 삶을 겪었습니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점심 끼니 때, 밥 한 그릇에 물을 부어 끓인 밥으로 6~7명이 요기를 하곤 했지요.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끓여 먹는 밥이 왜 그리도 뜨거웠는지, 너무 뜨겁다며 짜증을 내곤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고구마도 두어 개씩 쪄서 먹었습니다. 고구마를 먹을 때는 껍질을 벗겨 먹으면 아빠에게 혼이 나곤 했기 때문에, 아빠와 따로 먹을 때에만 껍질을 벗겨 먹었지요. 그때는 먹을 것이 워낙 귀했기에 고구마 껍질은 물론이며 고구마 줄기도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었기 때문입니다. 고구마 줄기에 붙은 잎사귀도 떼어 내지 않고 전부 삶아서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 먹었지요. 아침과 저녁에는 보리쌀에 고구마를 숭숭 썰어 넣고 밥을 지었습니다. 고구마 반에 보리쌀 반쯤으로 지은 고구마보리밥이었던 셈이지요. 흰 쌀밥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비록 보리쌀일지라도 밥 한 알, 한 알은 굉장히 귀했습니다. 우린 그렇게 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저보다 더, 밥 한 알에 얽힌 뼈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솥에 담긴 밥을 퍼 먹고 누룽지가 나오면 물을 부어 끓여먹곤 합니다. 어떤 때는, 너무 오래 물을 부어 놓아 푹 퍼져서 못 먹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에 너무 오래 잠겨 있어 흐물흐물하고 맛도 이상해 대개 버리고 마는데 엄마는 그 퍼져버린 심심한 누룽지까지도 다 드셨습니다. 6.25 전쟁 통에, 주변의 모든 먹을거리가 사라진 극도의 빈곤을 겪으셨고 심지어는 소금도 없을 정도로 굶주리는 세월을 사셨기 때문이지요.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퍼져버린 누룽지를 볼 때마다 엄마의 위대한 유산이라 생각하고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저도 아주 잘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엄마에게 받은 유산에, 한층 부가가치를 더했지요. 그 부가가치가 뭐냐고요? 그 퍼져버린 누룽지와 누룽지 국물까지 이용해 된장국을 끓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국물의 담백함이 어우러져 아주 담담한 된장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퍼져버린 누룽지 덕분인지 속이 편안하고 소화도 잘 되고 그렇습니다. 앞으로, 누룽지가 퍼져서 못 먹게 된다면 버리지 말고 국물까지 넣어 된장국을 한 번 끓여보세요. 아마 제가 느꼈던 맛을 똑같이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이야 먹을거리가 흔해져 이런 이야기들은 진부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로 들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누룽지 된장국을 먹을 때마다 엄마가 주신 위대한 유산,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배부르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에 숙연한 마음을 가집니다. 더불어 귀한 쌀을 길러주고 이렇게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생산자 분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