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공선옥
이 세상에서 듣기 좋은 말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밥 먹자’라는 말을 꼽겠다. 언젠가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을 만나러 시인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섬진강 옆 작은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시인은 그때 나를 처음 보는데도 대뜸 그러는 것이었다. “선옥아, 밥 묵자. 짐치에다가잉?” 짐치는 김치의 전라도 말이다. 내 속에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속의 아이고 소리는 그러니까 오래 긴장하고 오래 서러웠던 마음이 한순간에 푸욱 풀어지는 소리다. 눈물이 설컹 나는 소리다. 그렇게나 따숩고 그렇게나 인정스런 말을 아직도 하고 사는 사람이 있구나, 싶은 감동에 절로 “아이고오, 오빠아” 해지던 것이었다.
이 세상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밥 먹자’ 다. 나 또한 그렇다. 아침에 애를 깨우며 ‘나와서 얼른 씻고 밥 먹어라.’ 점심때도 저녁때도 ‘배 안 고파? 어서 와서 밥 먹어라.’ 아이는 ‘아까 밥 먹고 무슨 밥을 또 먹어?’ 한다. 그래도 언제나 나는 아이가 배고플 것이 걱정이다. 아이는 항상 배가 고플 것만같다. 배고파하는 아이를 보면 괜히 미안해진다. 손님이 와도 그렇다. 내 집에 오신 손님한테 밥은 안 내놓고 차만 내놓으면 왠지 모르게 사람 노릇을 못한 것만 같다. 집에 있을 때는 한두 끼 안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데 일단 집 나서면 배고파지지 않던가. 남의 집에 갔을 때 혹시 주인이 깔끔하게 차나 과일만 깎아 내놓으면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지던 경험이 있었다.
차나 과일 말고 차라리 술을 내놓으면 그나마 좀 낫고, 밥을 내놓으면 그렇게 반갑고 내가 대접받은 것 같이 여겨지지 않던가. 내가 남의 집 가서 밥 얻어먹는 것을 좋아하듯이 남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 나는 밥부터 차리고 싶다. 실제로 밥을 안 먹는다 해도 밥 먹었느냐고 물어준 것만으로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지만. 그러고 보면 김용택 시인이나 나나 천상 촌사람임은 틀림없다. 도회지 사람들은 사람을 만날 때 집 밖에서 만나지만, 촌사람들은 집에서 만난다. 그리고 첫 물음이 ‘밥 먹었느냐’다. “밥 안 묵었으면 밥 묵어요, 짐치에다가.” 남의 집 가서 아무것도 없이 김치 한 가지만 놓고 밥 한 그릇 먹고 나오면 그 얼마나 오지겠는가. 그 얼마나 정다운가. 식구 대접 받고 나온 것 같아 그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수학여행 간다고 갔다가 물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목메어 부르는 엄마는, ‘이제 그만 집에 가서 밥 먹자’고 절규한다. 이제 그 엄마는 밥때마다,맛난 것 앞에 둘 때마다 울음이 목에 차오를 게다. 그래서 그 엄마가 먹는 밥은 밥이 아니라 울음일 게다. 세월호의 아이들 엄마 말고도 그 울음밥 먹어야 했던 엄마들이 이 나라에는 왜 그렇게 많은가. 그것은 어쩌면 이 나라가 더 이상 밥을 나누지 않는 나라가 되어버린 때문일까. 밥을 나누면 울음도 좀 나누어질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도 ‘밥 먹자’고 흔연히 권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지나가는 아무한테나 ‘와서 밥 먹으라’고 권하던 옛 마을의 논두렁 사람들처럼.
글을 쓴 소설가 공선옥 작가는 따뜻한 눈길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사회현실에 대해 특유의 문체로 물음을 던지는 소설을 꾸준히 써왔습니다.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수수밭으로 오세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과 소설집『명랑한 밤길』, 산문집 『행복한 만찬』 등 많은 책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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