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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한살림하는 사람들

소식지 516호



“철학공부요? 에이, 감농사만 30년 넘게 지었지요.”

라상채 전남 담양 대숲공동체 생산자

감 수확은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감에 물기가 있으면 보관할 때 상하기 쉽다. 바쁘더라도 햇볕에 새벽이슬이 완전히 마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계절의 나침반은 겨울을 가리켜 해는 짧아졌다. 감꼭지를 쉽게 자르도록 끝이 살짝 구부러진 가위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숙련된 농부가 오후 동안 따는 감이 400kg. 쉬어가는 참 시간은 말 그대로 꿀맛이다. “20대에는 촌놈, 30대에는 자연인, 40대에는 토종 농사꾼이라 했는데 50이 넘어서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저를 소개하게 되네요.” 쉼 없이 손을 놀리는 와중에 나온 말이지만 라상채 생산자는 본인의 삶에 대해 분명히 정의한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확고히 섰고….’가 떠오른다. “한살림을 만나기 전부터 사람과 자연, 온 우주가 한 몸이라 생각했어요. 생산자와 소비자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여겼고요.” 술술 나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는 영락없는 철학자 농부였다. “철학공부요? 에이, 감농사만 30년 넘게 지었지요.” 뿐만 아니라 그는 전라남도에서 선정한 ‘유기농 명인’ 1호이기도 하다. 한 번 맛보라며 그가 잘 익은 감을 건넨다. 감 하나에 깃든 달콤한 온 우주를 상상해본다.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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