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병철 지리산 생태영성학교 교장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에워싸고 촉발된 한반도의 전쟁 위기 상황이 날로 고조되며 장기화 되고 있다.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그때는 남북한이 공멸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동안 애써 쌓아온 것이,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할 기반들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파괴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만은 막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전쟁위기로 치닫는 일촉즉발의 이 긴장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물음을 앞두고 누구보다도 간절히 한반도의 생명평화를 염원했던 사람,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떠올린다. 오월은 선생께서 돌아가신 달, 햇수로 어느새 열아홉 해가 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했던 선생이 일찍이 꿈꾸던 것은 세계연방정부, 곧 전 지구적 통합을 통한 국제평화체제의 구축이었다. 이른바 ‘원 월드 운동’을 통해 지역적, 민족적, 국가적 대립을 넘어 전 지구적 차원의 항구적 평화와 복지사회를 꿈꾸었다. 그리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내세웠던 혁명은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까지 모두 따뜻이 보듬어 안는 길이라고 하셨다. 학교를 세우고 협동조합운동을 이끌고 한살림을 제시한 그 모두가 이 생명평화의 길에 닿아있다.
내 마음이 곧 전쟁을 부른다는 경구가 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에서 빚어진 것이다. 그 정당성의 여부나 옳고 그름을 떠나 사태가 이렇게 긴박한 국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남북 모두 서로에 대한 깊은 불신과 피해의식과, 두려움이 깊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긴장완화를 위해 남북 간, 또는, 한반도와 직접적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주변 당사국 간의 대화와 안전 보장 등의 가시적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외교적인 조치와 무관하게 또는 그에 앞서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분명한 역할이 있다. 그것은 지금부터라도 우선 상대에 대한 시비와 적개심을놓고 남북한 당국자들이 무지와 두려움과 모험주의에서 헤어 나올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호소하는 일이다.
남북한은 적대국이 아니다. 비록 지금까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분단국이 된 채 대치 상태에 놓여 있지만 우리는 이 땅에 함께 살아가야할 동포요, 영원한 형제자매이다. 이 점을 어떤 상황에서든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깨어 있는 것이 사태가 전쟁이라는 공멸적 참사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 어떤 논리, 그 어떤 명분, 그 어떤 힘의 강제 앞에서도 우리 자신이 전쟁의 도구로 동원되지 않는 것이 전쟁을 막는 가장 분명한 방패이다. 그것이 전쟁을 방지하고 호혜상생의 평화통일 한반도를 이루어 가는 생명평화결사이다. 우리가 평화의 일꾼이 되는 것이 곧 그 길이다.
그러나 평화는 누가 선물처럼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평화가 되지 않고서는 세상 어디에도 평화는 없다. 따라서 이를 위한 분명한 자각과 서원이 있어야 한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내가 먼저 평화가 되겠다는 서원,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의 실천. 모든 생명이 나와 한 생명임을 아는 것 곧 한살림의 마음이 그것이다. 한살림이란 한생명이다. 모두 살리고 함께 살리는 것이 한살림이다. 그러므로 ‘한살림꾼’이란 곧 생명평화의 일꾼이다. 일상의 자리에서부터 분열과 대립을 벗어나 생명을 모시고 돌보고 보듬는 마음을 일구어가는 것이며 바로 그 마음, 그 기운으로 남북 간의 긴장 사태를 상생과 공존의 기운으로 되돌릴 수 있도록 마음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촉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한살림꾼이 생명평화를 위해 앞장설 과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미소 지으며 평화를 기원하고 그 마음으로 밥상을 마련하며 그렇게 밥을 모시면서 그 밥 속에 모신 천지부모의 은혜와 우주 만물의 공덕을 헤아리고, 물건을 아끼고 모시는 그 자리. 그 마음에서 평화의 기운이 모아지고 그 기운이 훈풍이 되어 팽팽한 긴장의 살얼음판을 녹여 한반도에 평화의 봄을 눈부시게 피어나게 할 것이다. 평화는 바깥에 어디 달리 있는 게 아니다. 한살림의 마음 안에, 그 삶의 자리에 있다. 무위당 선생께서 생전에 누누이 일러 주시던 말씀 또한 이것이었다고 기억한다.
글을 쓴 이병철 님은 초창기부터 한살림운동을 함께 해왔으며 지금은 귀농운동본부 생태귀농학교와 지리산 생태영성학교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마음공부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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