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살아있는 대지의 힘으로 눈보라를 뚫고 자라난 한살림 겨울 대파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겨울이다. 수은주가 영점 아래로 떨어지고 아침이면 하얀 서리가 들판을 뒤덮는다. 찬바람이 거세져 옷깃을 여미고서도 집밖으로 나서기가 꺼려지는 때다. 사람도 자연계의 생물들도 바깥활동을 자제하면서 비축해둔 양분으로 겨우살이 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일일지 모르겠다. 겨울에도 어렵지 않게 푸른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된 시절이지만 무언가 어색하다. 흙내가 덜하다고나 할까? 겨울에는 강렬한 생명의 기운에 대한 갈증이 더욱 심해진다. 다행히 한 겨울에도 푸른 채소들을 만날 수 있다. 서리 내린 들판에서 건강한 대지가 길러낸 한살림 겨울 대파가 있다.
대파는 마늘과 함께 한국인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양념채소다. 교통이 불편하던 예전에는 대파를 길러내는 남해안 지역 외에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한겨울에 대파를 구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구덩이에 대파를 묻어 저장해놓고 겨우내 대파를 먹는 지혜를 발휘했다. 다른 방법으로는 옹기 같은 그릇을 화분 삼아 대파를 심어 두고 방 한구석에서 키워가며 윗부분을 조금씩 잘라 먹기도 했다. 윗부분을 잘라내도 이내 새순을 밀어 올리는 대파의 성질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추위를 이기고 자라나는 강인한 생명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대파에는 영양성분이 풍부하다. 피로회복과 면역력 증강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C가 100g당 21mg이나 들어있다고 한다.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C 권장량이 약 70mg이라고 하니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대파를 부지런히 먹는 것이 좋겠다. 대파를 잘랐을 때 미끈거리는 성분에 많이 들어있는 황화아릴 성분은 피로회복과 소화를 돕는 것은 물론 혈당과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고 한다.
땅의 힘을 믿고, 지극한 인내와 정성으로 키운다
비록 대파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은 겨울철이지만 대파 농사는 아직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월경부터 시작된다. 이 무렵, 종묘상에서 소독되지 않은 종자를 구해 흙살림 상토에서 60일 정도 모종을 키운다. 5월 중순이 되면 유기질 밑거름을 뿌려 둔 밭에 정식을 한다. 넓게 퍼지지 않고 위로 자라는 대파의 특성 때문에 다른 작물보다 촘촘히 심는다. 이때부터는 생산자들의 지극한 인내와 정성이 필요한 시간이다. 5월 중순부터 수확이 시작되는 12월 중순까지 무려 7개월 동안 파밭을 관리하며 기다려야 한다. 때를 놓치면 금세 잡초밭이 되기에 주의를 기울이며 늘 김을 매주어야 한다. 일손이 부족한 생산지에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물론 제초제를 뿌리면 간단히 해결되겠지만 한살림 생산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균병, 담배나방 등의 병충해도 있다. 너무 심할 경우에는 솎아 주기도 하고 목초액이나 미생물 발효액을 뿌려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작물이 이겨내도록 믿고 기다린다.
“인내심을 가지고 믿고 기다려주면 대개 땅심으로 살아나지요.” 6년째 겨울 대파 농사를 짓고 있는 전라남도 해남 참솔공동체 김순복 생산자는 공들여 키우는 자식이라도 바라보듯 파밭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지들도 살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데요.” 올여름 닥친 태풍 볼라벤은 다른 작물들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겨울 대파는 무사히 견뎌냈다. 강한 바람에 우수수 쓰러지기도 했지만 안간힘을 쓰면서 기어이 일어나 자라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12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수확이 시작된다. 수확이 마무리되는 내년 3월까지 겨울 대파는 차가운 눈보라를 견디며 푸르른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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