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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살리는 말

<살리는 말> 풍류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풍류를 아는 민족이라고 전해져옵니다. 우리 춤을 생명운동 차원으로 끌어 올린채희완 선생은 한국고대사상의 한 상징인 풍류도는 천부경(天符經), 화랑도(花郞道)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풍류도를 가장 정확하게 전해주는 것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난랑비서(鸞郞碑序)의 글인데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접화군생이란 사람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동식물과 우주만물, 흙, 바람, 공기, 티끌까지도 마음 깊이 사귀어 경계를 없애고 서로 완성되고 해방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주 가까운 사이를 말할 때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합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두 사람, 혹은 여럿으로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 생각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아무런 경계가 없어 한 마음, 한 몸이라는 거지요. 다정한 연인이나, 부부 혹은 절친한 친구사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보기에도 한 몸 같은 뱃속의 아기와 엄마는 말 할 것도 없겠지요. 좀 더 의식을 확장해보면 우리 아이가 잘 자라려면 우리 아이에게만 관심과 애정을 쏟아서는 안 되겠지요. 그 아이가 자라면서 만날 무수한 다른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옆에서 헐벗고 굶주리는데 나 혼자만 잘 산다면 행복해지기 어려운 일 아니겠어요? 나와 나 이외의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 함께 생각과 생활을 나누며 사회 전체를 좋은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것을 사람사이의 접화군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사람들끼리만 잘 산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요? 인디언 문화에서 현대문명의 대안을 찾는 서정록 선생은 우주 만물이 순환하는 존재이므로 모든 존재는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생명세계의 그물망을 샤머니즘에서는 모든 사물이 영혼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그 영혼의 울림과 떨림이 현상으로 드러난 것을 바람, 흐름, 결이라 하는데 바로 그것이 최치원 선생이 말한 풍류이며 그 근본원리가 접화군생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우리를 둘러 싼 모든 자연과 서로 만나고 변화하고 존재를 섞으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존재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이 그렇고 모든 존재에 나뉘어 들어가 있다가 언젠가는 바다에서 다시 만나고 다시 무수한 생명으로 그 모습을 바꾸며 돌고 도는 물이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들이마시는 공기는 아프리카의 영양이 내쉰 숨일 수 있고 마시는 물에 오래전 황새가 마셨던 물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늘 한다면 이 세상이 나와 같이 소중하고 신성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끼게 되고 우주만물과 하나 되는 접화군생의 풍류도를 일상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겠지요.

외국의 유명한 연주자들이 한국에서 공연을 할 때 늘 감탄하며 "이렇게 열렬한 반응은 처음이다"라고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팔짱끼고 앉아 냉정하게 듣는 게 아니라 교감하며 마치 연주자와 한 몸처럼 감흥을 나눈다는 말이지요. 월드컵 경기 때의 거리응원은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런 일들이 우리 민족이 놀라운 교감, 감동, 감화, 진화시킬 줄 아는 뛰어난 풍류를 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합니다.
자연을 축소시켜 분재로 만들고 정원을 만든 일본과 달리 울 밖의 자연을 내 것인 양 만끽하며 살았던 조상의 후예답게 소유와 상관없이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것도 멋있게 놀다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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