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마을 들녘에 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면 맛있는 햅쌀이 밥상에 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우리나라는 세계 7∼8위권의 무역 규모와 세계 13~14위권의 국민총생산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국민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세계 최하위권에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5년 5월 17일 내놓은 ‘2015년 신입사원 채용실태’를 보면, 대졸자들의 취업 경쟁률이 평균 32.3대 1에 이른다고 합니다. 100명이 지원했을 때 3명만이 뽑혔다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2014년 농고·농대 졸업생 진학 현황’에 따르면 농고 졸업생 100명 가운데 1명, 농대 졸업생 가운데 7명만이 졸업한 뒤에 영농에 종사한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이니 어찌 들녘에 벼가 익어간다고 마냥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이 ‘생명 창고’인 농촌을 버리고 온통 도시에 몰려 경쟁에 지쳐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사람의 길’을 찾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살고 있는데, 무슨 보람과 기쁨으로 햅쌀이 목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그 젊은이들은 모두 우리 아들딸이기 때문입니다. 언제쯤 이런 세상이 올까요? 젊은이들이 생명을 키우는 흙과 물과 바람과 햇볕과 별빛이 쏟아지는 농촌 들녘에서 웃고 노래하며 농사지을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요?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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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황매산 기슭 작은 산골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틈틈이 시를 쓰고 있습니다. 58년 개띠인 제 나이는 올해 58세입니다. 이 나이에 11년째 우리 마을에서 ‘청년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아래는 2015년 9월 현재, 우리 마을 청년회원들 명단입니다.
장대 아지매(75세), 방아실 아지매(75세), 하동 아지매(75세), 하동 어르신(79세), 덕춘 아지매(74세), 이경식(56세), 우동 아지매(73세), 우동 어르신(71세), 한동 아지매(63세), 한동 어르신(67세), 서울 아지매(69세), 현동 아지매(81세), 현동 어르신(85세), 설매실 아지매(74세), 조영래(54세), 마산댁(56세, 아내), 그리고 나(58세)와 지난해 귀농한 노총각 이인화(49세)를 합쳐서 모두 18명입니다. 평균 나이가 69세입니다.
제가 이 마을에 들어온 지 겨우 11년 지났는데 벌써 여덟 분이나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사는 나무실 마을에는 열한 집이 있고, 그 가운데 다섯 집에는 아지매(할머니) 혼자 사십니다.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서른 집이 넘고, 100여 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지금 마을 전체 인구가 옛날의 한 집 식구도 안 된다며 안타까워합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모두 청년들입니다. 왜냐면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우리 마을도 사라지기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영원한 청년들입니다.
산다는 게 모두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사는 것인데, 밥 한 숟가락 목으로 넘기지 못하면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데. 무어 그리 욕심이 많은지… 오늘도 들녘에 서서 가을 햇살 아래 익어가는 벼를 바라봅니다.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그 날을 꿈꾸며 마냥 바라봅니다.
글을 쓴 서정홍 님은 합천 황매산 기슭 작은 산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이웃과 함께 배우고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땀 흘려 일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걸 깨닫고, 글쓰기에도 힘을 기울여 시집《58년 개띠》(보리),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보리), 산문집 <농부 시인의 행복론>(녹색평론사), <부끄럽지 않은 밥상>(우리교육) 등의 책을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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