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은 기본,
하늘이 도와야 얻는
생명력 가득한
한살림 고춧가루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한살림 고춧가루는 참 억울하다. 1년 내내 땀 흘려 유기농으로 길렀는데 대접을 받지 못해서다. 고추는 기르는 게 참 어렵다. 탄저병이 오면 순식간에 퍼져 한 해 농사가 그대로 끝나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살림 생산자들은 화학 농약 하나 없이 유기농으로 기른다. 식생활 문화가 바뀌어 가정에서 김장을 하지 않고, 바깥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고춧가루 소비가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 고춧가루 때문에 고춧가루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한살림 고춧가루 소비가 주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중국산 고춧가루는 어떻게 길렀는지 알 수도 없고 빨간 빛을 내는 색소가 들어있기도 하다. 그런데 비교 대상이 된다니, 한살림 고춧가루 입장에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올해는 소비 촉진을 위해 부득이하게 고춧가루 가격을 내리기까지 했다. 한살림 고춧가루가 맛깔스런 양념이 되는 길은 험난한 일인 것이다. 이런 한살림 고춧가루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알아주기 위해 고춧가루의 생애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하늘의 도움 받아
유기농으로 길러
고춧가루를 이야기 하려면 그 모태인 고추부터 살펴봐야 한다. 1년 내내 짓는 고추농사는 1월 말, 넓은 모판에 씨를 뿌리며 시작된다. 1주일 정도 지나 싹이 어느 정도 자라면 칸이 구분되어 있는 모판에 옮겨 심어 기른다.
고추의 튼튼함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 물 주기부터 시작해 습도, 온도까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90일 정도 지나면 거름을 넉넉히 준 밭에 옮겨 심는다. 고추가 땅에 잘 뿌리내릴 수 있게 물을 충분히 주고 수확이 끝나는 11월까지 잡초제거를 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숨 막히는 더위에도 생산자들은 풀을 뽑고 고추를 딴다. 최근에는 이동용 수레에 파라솔이 달린 농기구가 나오기도 했지만 힘든 건 매한가지다. 그래도 이 일은 어려움을 참고 하면 할 수는 있는 일이다. 장마가 오면 농부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탄저병이 들이닥친다.
습기에 약한 고추가 쉽게 걸리는 탄저병은 순식간에 온 밭으로 번진다.병에 걸린 고추는 그대로 녹아내려 한 해 농사가 한 순간에 끝나버리기 십상이다. 생산자들은 석회보르도액, 현미식초 등을 뿌리고 거름을 넉넉히 줘 고추를 튼튼하게 하는 예방을 한다. 하지만 병이 오고 안 오고는 전부 하늘에 달린 일이다. 그나마 효과가 있는 게 화학 농약인데, 한살림 생산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식 같은 고추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장마가 심했던 작년 같은 경우는 탄저병으로 고추 농사를 망쳐 고추 생산자임에도 고춧가루를 사 먹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55℃ 이하에서 저온 건조해
씨를 뿌리면 싹이 나는 건고추
건고추는 완전히 익어 붉은빛이 도는 고추로 만든다. 수확한 고추는 빛깔이 곱게 나도록 하루 이틀 상온에 숙성시키고 현미식초를 탄 물에 깨끗이 씻는다. 말끔해진 고추는 건조기에 들어가 45~55℃에서 4~5일 동안 서서히 말린다. 시중 건고추는 온도에 대한 규정이 없어 대개 손쉽게 고온 건조하지만 한살림은 규정에 따라 저온 건조를 한다. 이렇게 말린 건고추는 영양소 파괴가 상대적으로 적고, 생명력도 살아 있어 그 씨를 뿌리면 발아가 되기도 한다. 비닐하우스에서 말린 건고추가 더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비닐하우스 온도가 한낮에는 55도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한살림 건고추는 꼭지가 초록색을 띠어 제대로 말리지 않은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있다. 오해는 오해일 뿐. 각 지역에서 달리 재배하는 고추 종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 저온 건조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꼭지가 너무 바싹 말라 있는 건고추는 한 번 삶은 뒤, 고온에서 말렸을 건고추일 가능성이 크다. 저온 건조 과정을 거친 건고추는 건조 과정에서 흠이 생긴 것들을 하나하나 선별하고 실한 것들만 자루에 담아 생산자가 직접 고춧가루 가공시설로 가져간다.
쇳가루 제거 자석에
자외선 살균까지
이물질 걱정 없는
고춧가루 가공과정
충북 괴산·단양, 충남 보은·부여, 경북 봉화·의성, 강원 홍천·횡성, 전남 해남 등 전국 곳곳의 한살림 생산지에서 유기농으로 기르고 저온 건조한 18만근(2013년 기준)의 건고추는 충북 괴산과 제천의 고춧가루 가공시설에서 고춧가루로 거듭난다. 해썹(HACCP, 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인증을 받은 고춧가루 가공시설은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있다. 먼저, 건고추 꼭지를 제거하고 공기 세척을 한다. 이물 선별과 스팀세척 후 건조 과정이 이어진다. 건고추 과육과 씨를 분리하는 과정도 있는데, 입자가 고운 장용 고춧가루는 씨를 빼고 과육으로만 만든다. 이제부터 분쇄 과정이다. 일정한 크기로 분쇄되지 않은 고춧가루는 거름망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시 분쇄 과정을 거치므로 입자가 균일한 고춧가루가 나온다. 고춧가루는 자석을 통과해 분쇄과정에서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쇳가루를 제거 한다. 자외선 살균을 거치고 포장이 완료되면 마지막으로 이물질 탐지기를 통과한다. 혹시라도 방앗간에서 빻는 고춧가루를 생각했다면 깜짝 놀랄 한살림 고춧가루 가공과정이다.
한살림 고춧가루는 모두 유기재배한 고추로 만들지만 곳곳에서 재배한 고추를 모아서 빻기 때문에 현행법상 유기농 인증표기를 할 수 없다. 그러니, 포장지에 인증표기가 없어 의아해 하셨던 분들은 특별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올해도 고추와 함께 1년을 보냈습니다 김동연 경북 봉화 산애들공동체 생산자 농부의 딸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옥수수 농사, 감자 농사, 고추 농사 참 지겹게 많이 도왔습니다. 그때는 농약이나 제초제는 상상도 못 했고 고추도 밭에 씨를 바로 뿌려 길렀던 게 생각납니다. 어른이 되어 꿈을 안고 서울로 떠났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한살림 생산자로 고추 농사를 지은 지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올해도 고추와 함께 1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봄에 고추 모종을 기르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이불을 덮어가면서 온도와 습도를 맞춰 줬는데 키가 10cm가 안 되더라고요. 밭에 옮겨 심었는데, 멀리서는 잘 보이지도 않아 참 속상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고맙게도 고추가 훌쩍 자라더군요. 어찌나 반갑던지. 저는 이렇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수확할 때보다 신이 납니다. 한살림 조합원들께 막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요. 하지만 장마가 시작되면 불안해집니다. 탄저병이 오지 않도록 영양분을 주고 하늘과 땅에 열심히 기도하지요. 하지만 이놈의 탄저병은 한 해도 그냥 지나가질 않아요. 올해는 벌레가 심해 할미꽃 뿌리, 은행잎 달인 물을 뿌려 효과를 보았지만 탄저병은 뭘 해도 소용이 없네요. 고추 따는 걸 도와주는 할매들은 “그냥 약치고 시장에 내라”고 하지만 한살림 하면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떠오릅니다. “저는 평생 이 농사짓고 살아야 해요.” 할매들께 말하고 힘을 냅니다. 이렇게 고생하며 기른 고추인데, 고춧가루 소비가 부진하다는 말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제가 좀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부족한 탓이겠지요? 좋은 것들로만 고르고 골랐는데 혹시나 문제가 있어 조합원 분들 맘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물품을 내고 나면 항상 며칠씩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저희 생산자들은 든든한 버팀목인 조합원들이 있어서 마음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저를 믿어주는 한살림 소비자 조합원들이 있어서, 함께 땀 흘리는 한살림 생산자 회원들이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한살림 안에는 따뜻한 공기가 있더라고요. 지금도 항상 생각합니다. 한살림 하길 참 잘했다고, 자랑스럽다고. 여러분 덕분에 농사 잘 짓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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