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아카시아 꽃이 휘날리며 떨어질 때면 무위당 선생이 생각난다. 매년 5월 셋째 주말이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의 묘소에 모여 아카시아 그늘 아래서 밥 한 그릇 모셔 들고 선생의 말씀을 되새기며 우리의 갈 길을 되돌아보곤 한다.
몇 년 전 이현주 목사님께 글씨를 받으려고 뵌 적이 있다. 그때는 전국을 쏘다니며 무위당 전시회를 개최하며 일을 펼치고 다닐 때였다. 열심히 일에는 몰두하고 있었지만 늘 마음에 걸렸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선생의 유훈인 “내 이름으로 아무 일도 하지 마라”는 말씀이었다. 혹시 내가 하는 일이 선생의 유훈을 어기고 선생을 팔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목사님께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웃으면서 한 말씀 해주셨다. “걱정 마시게, 선생님 말씀은 억지로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사과나무를 심고 열심히 가꾸면 나무가 잘 자라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고, 그럼 그 과실을 따서 감사히 먹으면 되는 거예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런데 우리는 가끔 욕심이 과해져서 자연을 거스르게 돼요. 돈 욕심으로 과실을 먼저 생각하고 사과의 개수를 늘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나무를 무리하게 키우려고 하지요. 이러지 말라는 거예요.”
요즘 우리 사회는 돈 욕심에 눈이 멀었다. 어려서부터 경쟁논리가 뿌리깊이 심어지면서 우리는 무리를 해서라도 결과를 얻어내려고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명보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세상이 되었고, 결국 세월호의 어린 생명들을 깊은 바다에 무참히 버려두고 도망쳐버렸다. 참으로 한심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상대를 향한 싸움으로 날을 지새운다. 자연을 거꾸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한살림이 30년이 되었다. 조합원은 50만 가족이 넘었단다. 작은 쌀가게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커다란 거목이 되었고, 전국 방방곡곡에 새로운 한살림 나무가 심어지고 퍼져가고 있다. 그동안 고 박재일 회장, 이상국 대표를 비롯한 수많은 분의 노고와 열정이 있어서 가능했다. 참으로 고마운 자기희생의 모습이었다. 세월이 흘러 30년이 지났다는 것은 한 세대가 지났다는 것이다. 그럴 즈음엔 어떤 조직이든 많은 결실과 더불어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지금의 한살림도 여러 문제 앞에 직면하고 있다. 예전만큼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고, 처음의 정신을 잠시 잃을 수도 있다. 그에 따라, 매출의 정체성도 나타나고, 지역과 서울,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현실적인 의견대립도 보일 수 있다. 더욱이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가공사업이 중심이 되어 공익적 취지가 개인화되면서 돈 중심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제 한살림은 이런 문제들을 함께 극복하고 새로운 30년을 준비해야 한다. 한살림은 원래 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고,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기 위해 만들어진 운동조직이다. 나무가 자라 거목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열매의 결실을 맺어 그 과실을 우리가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한편, 한살림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사업 역시 잘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할 수 있고, 많은 일자리를 통해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다. 운동과 사업은 모두 소중하다. 단지 순서가 잘못되어 억지로 무엇을 이루려 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한살림 처음의 정신을 늘 되새기며, 앞으로 30년을 새롭게 우리 모두가 함께 준비하면 참 좋겠다.
*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1928~1994) 1960, 70년대 지학순 가톨릭 원주교구 주교 등과 민주화운동과 신용협동조합운동, 사회개발운동을 이끌었다. 1980년대에는 ‘한살림농산’을 설립한 박재일 등 도반들과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생명공동체를 위한 한살림운동을 펼쳐 한살림의 정신적인 터전을 마련했다.
글을 쓴 황도근 님은 물리학자이며 상지대학교 교수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뜻을 좇아 학자로서의 본분만큼이나 생명운동가로서의 활동과 발언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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