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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창

지금 여기, 손 맞잡을 이웃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윤형근 한살림성남용인 상무이사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얼마 전 영주의 한 중학생이 또 몸을 던졌다. 삶에 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뉴스를 듣던 우리의 마음은 더 쓰렸다. 전 우주의 무게만큼 소중한 그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학교폭력이었다. 작년 말 대전 여고생, 대구 중학 생이 목숨을 끊은 뒤 정부당국과 교육계에서는 학교폭력을 추방한다고 온갖 대책을 세웠건만, 그 대책이란 것이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 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최고에 속한다. 2009년 한해에만 1만 54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인 자살률 은단연1위이다.60세이상은10만명당80명,80세이상은120명에이른 다고 한다. 아이들과는 달리 이들은 경제적 곤궁과 사회적 소외감 때문에 가 슴아픈선택을한다.

 다들 짐작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나이 여하를 막론하고 자살의 가장 근본 적인 원인은 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우리의 삶이 무한경쟁의 경제 전쟁터가 되어 버린 탓이다. 옆에 있는 친구조차 내가 밟고 넘어서야 할 경쟁상대로 여겨야 하는 잔혹한 정글 속에서 버티기에는 강하 지 못한 연약한 존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어느 대학교수의 말처럼,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살아남은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에 무릎 꿇고 속죄 의 기도를 해야 하리라.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 목숨을 끊는 사람이라도 최후의 순간에 외로 움,두려움을토로할단한사람,손을맞잡을한사람이라도있었다면,그 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후미진 곳에서 외 로움에 떨고 있을 다음의 또 한 아이, 또 한 사람에게 우리는 어떻게 손을 내 밀수있을까?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에 손을 내미는 것보다 더 강한 속죄는 먹고 먹히는 정글이 아닌 다른 삶의 모습을 우리 스스로 일구는 일일 것이다. 인간 사회 를거룩하게만드는것은,1995년고베대지진때,그리고핵사고로우리를 여전히 괴롭히고 있는 작년 후쿠시마의 동일본 대지진 때 굶주림과 공포 속 에서도 가진 것을 나누고 약자를 배려하고 돌보는 협동의 힘이었다는 것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한살림을 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무한경쟁으로, 기후변화로, 핵 위기로, 온갖 오염물질로 이미 세상은 우리 힘으로 돌려놓을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망가져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이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며, 어떤 자극에도 불감하다. 반대로 어떤 이는 온갖 오염물질과 무시무시한 경쟁의 상황에 지나치게 과민하다. 그 불감과 강박은 문제를 가져온 불신과 탐욕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걸 어야 할 길은, 불감으로 인한 무관심이 아니라 안전 과민의 강퍅함이 아니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더한 고난의 순간에도 따뜻한 손을 맞잡고 함께 문제를 헤쳐 갈 사람들, 이웃들을 지금 여기에서 만드는 일이다.

 신뢰를 주고받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그렇고, 마을과 동네의 이웃들과 나누 고배려하고돌보는손길들의얽혀짐,엄마같은,내친구같은따뜻한손길을 주고받는 한살림이 일구어야 할 나눔과 배려, 돌봄의 안전망이 절실한 때다.

 “자식새끼 데리고 이웃과 친화하면서 사는 삶”. 무위당 선생이 돌아가신 지 이미 스무 해 가까이 흘렀다. 그러나 선생이 강조하시던 이 말씀의 의미 는날이갈수록더욱무겁게와닿는다.


 

글쓴이 윤형근님은 무위당 선생이 참여하던 한살림모임의 간사로 일하며 한살림선언 등 한살림운동이 추구하는 가치를 글과 말로 정리하는 일을 함께 했으며 지금은 한살 림성남용인 상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5월20일 일요일, 무위당 선생 18주기 추 모식이 원주시 소초면 수암리에 있는 묘소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