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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자연에서 온 귀한 것

정직한 땀이 길렀다는 말 예사롭지 않구나, 고구마

정직한 땀이 길렀다는 말 예사롭지 않구나, 고구마


·사진 문재형 편집부


고구마 농사는 씨고구마를 마련하는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가을에 수확을 하면서 크기가 자잘한 씨고구마용 고구마를 따로 선별한다. 2월 말이 되면 겨우내 잘 간직한 씨고구마를 2달 정도 온상에서 키워 싹을 틔우는데 이 시기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싹이 타 죽어버리고 온도가 너무 내려가면 얼어 죽기 때문이다. 일반 고구마 재배농가에서는 시장에서 싹을 사다 심고 간단히 끝낼 일이지만, 한살림 고구마산지에서는 자가 채종을 통해 더욱 믿을 수 있는 고구마를 생산하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생산자들은 2달 동안 고구마 온상 근처를 맴돌며 아기를 키우는 마음으로 씨고구마를 보살핀다. 

 깻묵, 농사 부산물 등의 유기질 비료를 뿌려놓은 밭에다 씨고구마에서 싹튼 고구마순을 심는 것은 4월 말이나 되어서다. 자가 채종으로는 한꺼번에 심을 만큼 넉넉한 고구마순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에 일주일 간격으로 싹을 길러 차례로 심는다. 모종은 15~20cm 거리를 두고 밭두둑에 비스듬히 뉘여 심는다.

 가을에 수확할 때까지는 웃거름으로 쌀겨, 미생물 등을 혼합한 친환경 액비를 주고 서너 번 제초작업을 한다. 시중의 여느 고구마들처럼 제초제나 농약을 뿌리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풀을 잡기 때문에 들어가는 품과 땀이 적지 않다. 때때로 고라니 같은 산짐승 등이 내려와 고구마 밭을 휘젓거나 어린 싹을 먹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그물로 울타리를 치고 밤에는 불빛이 들어오는 경광등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효과가 그다지 크지는 않다. 고구마에는 총채벌레, 굼벵이 등의 해충 피해도 있는데, 친환경 약제로 방재를 하기도 하지만 피해가 아주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벌레 피해마저 자연의 섭리라 여겨 그대로 두기도 한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밤고구마의 경우 여주에서는 9월 중하순이면 수확이 시작된다. 수확을 할 때면 먼저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트랙터 등의 기계를 이용해 땅속에 알이 굵어져 있는 고구마를 캐낸다. 한살림 출하기준에 적합한 50~500g 사이의 고구마를 선별하고, 캐낸 상태로 1주일가량 바람과 햇빛에 말려 수분을 줄이는 한편 상처 난 부위가 자연스럽게 아물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거둬들인 고구마는 9~11℃를 유지하는 저장고에서 냉해피해가 없도록 안전하게 보관하며 이듬해 봄까지 공급을 한다. 


단맛에 매료되고, 그 정성에 감동한다


고구마는 연작 피해가 있는 작물로, 한 밭에서 3년 이상 재배하면 고구마 바이러스가 발생해 품위가 떨어지기 쉽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살림 생산자들은 양파, 무, 배추, 땅콩 등 다양한 작물들을 돌려짓기 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다. 한 번 발생한 병해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 가 어떤 경우는 5년 넘게 고구마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기도 한다. 일반 농가의 경우라면 토양소독제 등 농약을 치기도 하지만 한살림 생산지에서는 그럴 수 없어 농사짓는 어려움이 배가 된다.

 한살림 고구마의 주요 생산지인 여주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토양의 배수와 통기가 잘 되기 때문에 고구마 농사에 적합한 곳으로 알려져 있고 여주고구마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 때문인지 이 지역에는 고구마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많고 그만큼 바이러스로 인한 병해도 심하다. 안전한 밭을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땅을 원하는 농부들도 많기 때문에 경지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경기도 여주군 금당리공동체의 송두영·경영란 생산자 부부의 경우는 안전한 밭을 마련하기 위해 논에 객토(토질을 개량하기 위하여 다른 곳의 흙을 옮기는 것)를 한 뒤 고구마를 경작하고 있다. 원래 논이었던 곳에 객토를 한 탓에 다소 수확량이 떨어지고 비용도 더 들지만 소비자 조합원들께 맛있는 고구마를 공급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이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고령화와 일손 부족 현상은 생산농가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때로는 매장이나 공급을 통해 만나는 한살림 고구마가 껍질이 조금 벗겨져 있기도 하고 모양도 가지각색인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생산자들이 얼마나 각별한 노력으로 남다른 고구마를 길러내고 있는지를 이해하면 고구마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고구마에 남아있는 자잘한 생채기들에는 농부의 땀 한방울이 스며있는 것이다. 한살림 고구마에는 햇살과 바람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고구마를 소비자 조합원들께 보내겠다는 속 깊은 인내와 각별한 노력이 응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