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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자연을 담은 한살림 꿀초, 담양 대숲공동체 빈도림 이영희 생산자 부부

자연을 담은

한살림 꿀초

몸에 해롭지 않은 천연 밀랍초 만드는

담양 대숲공동체 빈도림·이영희 생산자 부부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1970년대 후반, 농촌의 깊숙한 마을까지 전기가 보급되면서 초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본래 어둠을 밝히는 게 초였다면 이제는 특별한 분위기와 고요함을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 많은 현대인들이 촛불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하지만 시중에서 흔히 사용하는 초들은 대개 석유 정제 물질인 파라핀으로 만들어 몸에 해로울 수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에 따르면 파라핀 초는 타면서 독성이 강한 톨루엔과 벤젠을 내뿜는다고 한다. 다행히 한살림에서 취급하는 초는 천연 밀랍으로 만든 꿀초이기에 독성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롭다. 밀랍에는 벌이 채집한 꽃가루인 화분과 천연 항생제 프로폴리스가 함유되어 있다. 자연에서 온 꿀초. 봄기운 가득한 춘분 날, 꿀초를 만드는 담양 대숲공동체 빈도림ㆍ이영희 생산자 부부를 만나고 왔다.

 

손때 가 묻어나는 5평 남짓한 공방을 방문했을 때, 이영희 생산자는 초에 들어갈 심지를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있다가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이내 빈도림 생산자가 공방으로 들어와 악수를 청했다. 사실 빈도림ㆍ이영희 생산자는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가진 분들이다. 본래 독일 출신인 빈도림 생산자의 독일 이름은 디르크 휜들링, 2005년 귀화한 푸른눈의 한국인이다. 대학시절 한국학을 공부하다 한국에 푹 빠져 한국으로 유학을 오기까지 했다는 그는, 담양에 정착하기 전 대구에 있는 한 대학의 강단에 서는가 하면 독일 대사관에서도 근무했었다. 이영희 생산자는 반대로 독문학을 공부했고 독일로 유학을 갔다 와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걸었다. 둘은 독일 대사관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 후,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 담양으로 귀촌을 하게 됐는데 토종벌 밀랍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꿀초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꿀초를 만들면서 틈틈이 두 나라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빈도림 생산자가 한국어로 된 책을 독일어로, 이영희 생산자는 독일어로 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다.

 “꿀초는 자연에서 온 밀랍을 모습만 바꾸는 것이라 해롭지 않아요. 다만 만들자면 손이 많이 가죠.” 꿀초 만드는 과정에 대해 질문을 하자 이영희 생산자는 직접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꿀초를 만들자면 먼저 밀랍을 녹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밀랍은 벌집을 만들기 위해 벌이 꿀을 먹고 신진대사를 통해 체내에서 생산하는 물질로 벌이 꿀 6kg을 먹어야 밀랍 1kg이 나온다. 원래는 토종벌의 밀랍을 사용했는데, 토종벌이 귀해져 지금은 양봉의 밀랍을 쓰고 있다. 밀랍을 섭씨 70~80도가량 되는 따뜻한 물에 중탕으로 녹여 밀랍물로 만든 뒤 필터로 두세 번 불순물을 거른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중에 초가 잘 타지 않는다고 한다. 밀랍물이 준비되면 꿀초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성형 한다.

 굵은 소망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기계틀들에 가지런히 심지를 매단다. 기계를 작동시키면 기계틀이 움직여 밀랍물이 담긴 통에 심지를 넣었다 빼고 이어서 다음 기계틀들도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처음 심지를 담갔던 기계틀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밀랍물에 닿는 시간이면 밀랍물이 굳어 성형이 되는데 기온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이 작업을 30~40번 반복 하면 소망초가 완성된다. 완성된 소망초 밑 부분에는 흘러내린 밀랍물이 굳어 고드름 모양의 밀랍이 달린다. 이 부분을 칼로 잘라내는 게 아니라 뜨거운 물에 담가 녹여서 매끈하게 하는데 보통 정성이 아니다. 작고 납작한 티라이트초는 심지를 성형틀 가운데 고정시킨 뒤 밀랍물을 붓는다. 시간이 지나 딱딱하게 굳은 초를 성형틀에서 분리하면 완성이다.


공방에서 사용되는 도구들은 주문 제작하거나 직접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원래우리나라에서 꿀초는 신라시대부터 사용됐다고 전해지지만 이들이 꿀초 만들기를 작정하고 시작할 무렵, 한국에는 그 방법을 아는 이가 없었다. 다양한 실험을 해 보았지만 여의치 않아 독일에까지 가서 기술을 배워 와야 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초를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도 마땅한 게 변변히 없었다. 이렇게 꿀초 만들기를 시작한 뒤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공방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초를 끌 때, 핀셋으로 심지를 기울여 촛농에 담가서 끄면 연기도 안 나고 심지도 코팅이 되어 좋아요.” 빈도림 생산자는 꿀초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이니 이것을 조합원들께 꼭 전해달라고 했다. 또, 티라이트초는 여러 번 불을 붙였다 끄면서 사용하는 게 아니라 1~2회에 걸쳐 모두 태우는 것을 감안해 만들었다고 하니 이용할 때 참고하면 좋겠다 싶었다.

 한살림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매월 마지막 금요일 ‘전등을 끄고 생명의 불을 켜요’라는 이름으로 한 시간가량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캔들나이트 행사를 권유해왔다. 빈도림·이영희 생산자는 한살림에 꿀초를 공급하기 전부터 여성환경연대 등과 캔들나이트 행사를 함께 해왔다. “기왕이면 꿀초를 사용하는 게 몸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겠지요?” 두 사람은 밝게 웃으며 말한다. 다가오는 금요일, 꿀초를 켜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환한 얼굴로 꿀초를 만들던 두 생산자처럼 우리 일상도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짤막한 초 이야기 최초의 초는 밀랍으로 만든 초로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에서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있다. 밀랍 이외에도 소기름, 유채기름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초를 만들었으나 19세기 값싼 파라핀이 발견됨에 따라 오늘날 대부분의 초는 파라핀을 원료로 만들고 있다. *위키백과(ko.wikipedia.org)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