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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창

쌀 시장 전면 개방, 생명밥상 주권을 위협한다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정부의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전면 개방 선언으로 국민들은 ‘안녕들 하지’ 못하다. 쌀은 이 땅의 역사와 함께해 온 오래된 제터먹이이며 우리 생명밥상 주권의 상징인데, 정부는 일방적으로 개방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동안 양곡관리법으로 쌀 수입을 금지해왔지만, 지난 7월 18일 정부 발표대로라면 앞으로 누구나 관세만 내면 쌀을 수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지난 20년 간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쌀을 수입해왔다. 정부는 2013년 쌀 의무수입량이 국내 소비량의 9%에 달하는 40만9천 톤까지 늘어난 점을 들어 쌀을 전면 개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높은 관세를 매기면 추가 수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같은 변수 등을 고려하면 고율관세를 유지하는 일이 결코 녹록치만은 않아 보인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곡물 자급률이 23.1%(2013년)까지 추락한 나라에서 쌀 생산기반마저 무너지면(쌀 자급률은 3년 연속 80%대를 이어가고 있음) 우리 농업은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명밥상 주권도 크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해당사자들과의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것은 물론, 국회의 동의 절차도 밟지 않은 채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정부에 대해 쌀 관세화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충실히 제공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쌀 관세화 방침을 정하기에 앞서 국내 양곡관리법을 개정해야 함에도 정부는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법이 정한 대로 민주적인 의견수렴을 거치고 주권국가의 주인으로서 제대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은 마땅히 관련 정보를 알아야 한다.

둘째, 정부가 2014년의 상태 즉, 쌀수입허가제와 2014년 의무수입량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도록 요구해야 한다. WTO 협정문에는 쌀 시장 개방을 미룰 경우 의무수입량을 늘린다거나 한번 늘어난 의무수입량을 다시 줄일 수 없다는 조항이 없다. 2014년 9월까지 쌀 관세화를 통보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5년 쌀 시장 자동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셋째, 불가피하게 관세화가 진행되더라도 WTO 협정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을 설정할 것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여러 연구소들이 예측하는 관세율은 500%를 약간 웃돈다). 다른 나라에서 정부가 정한 관세율을 검증하고 이의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도 고율관세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법률로 정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WTO나 TPP 협상 과정에서 관세율을 낮추라는 압력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정부가 쌀 관세화를 밀어붙이기 전에, 우리 쌀 생산기반을 지킬 획기적인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서둘러 마련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통상협상에 대한 치밀한 협상전략을 세울 것을 요구해야 한다. 지난 20년 간 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한없이 굼떴고 대책은 우왕좌왕했다. 향후 한중FTA, TPP 등의 협상에서 예상되는 쌀 관세 추가 인하 압력에 대해 정부는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이제라도 쌀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소비자 공감 폭을 넓혀가면서 쌀을 바라보는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은 결코 6%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94%의 소비자들에게도 절실하고 절박한 문제다. 전면 개방으로 국내 쌀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벼 재배면적이 갈수록 줄어들고 쌀 자급률도 덩달아 떨어지게 된다. 기후변화가 심상찮은 상황에서 큰 기상이변이라도 일어나면 돈 주고도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여섯째, 쌀 관련 물품 이용을 늘리고 쌀밥 중심의 전통적 식문화를 보존해야 한다. 한살림은 초창기부터 우리 농업과 생명활동의 근간인 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1992년에 ‘쌀수입은 위험하다’와 같은 비디오테이프를 제작 배포했으며, 2002년 이후 ‘우리쌀 지키기 운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런 노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대해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쌀 관련 물품을 확대하면서 이용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와 함께 쌀밥 중심의 전통적 식문화를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제안하고 전개해야 한다.

쌀은 우리 땅에서 유구한 세월 우주 만물의 협동과 농부들의 땀과 정성으로 이어져 왔다. 앞으로도 쌀이 우리 민족의 먹을거리로 남고 우리 아이들도 우리와 같은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지금 쌀 시장 전면 개방을 막는데 온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