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 발자취/살리는 말

<살리는 말> 요소론



우리 옛이야기에 죽음을 앞 둔 아버지가 자식들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나란히 앉은 삼형제에게 각각 회초리 하나씩을 부러뜨리라고 합니다. 이미 다 큰 자식들이 쉽게 회초리를 부러뜨리자 이번에는 한 묶음의 회초리를 내놓습니다. 애를 써도 부러뜨리지 못하자 아버지는 아무리 힘에 겨운 일이라도 서로 힘을 합하면 감당할 수 있으니 늘 돕고 살라고 당부한 후 돌아가셨다지요.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도 있었는데 인디언 마을을 점령한 미국인들이 학교를 세우고 가르친 다음 시험을 치기로 합니다. 서로 말도 나누지 못하게 띄엄띄엄 앉히고 가운데 책가방도 올려놓고 시험지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시험지를 본 아이들이 우르르 한 데로 모이더니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요? 깜짝 놀란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어른들이 가르치신 대로 혼자 힘으로 풀기 어려워 함께 의논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답니다. 이처럼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웃과 함께 어울리며 슬픈 일, 기쁜 일도 같이 겪고 힘든 일은 함께 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잘도 넘겼습니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는 그리스 시대부터 요소론 혹은 원자론이라는 학설이 등장해 복합적인 현상을 고정된 입자나 단위의 집합체로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는 것인데 사회적으로는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를 개인으로 보고 개인들에게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지혜라고 여깁니다. 뛰어난 몇몇 개인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이 여럿의 지혜를 모으는 것 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여서 해결하라던 우리 선조의 가르침과는 정 반대인 셈입니다.

원자론이나 요소론은 그런 이유로 개체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는 개인만 보는 것처럼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을 햇빛 따로, 물 따로, 땅 따로, 벌레 따로, 사람 따로 생각하지 그 사이의 관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라만상이 서로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기에 공기나 물을 마구 오염시키면서도 자신의 건강과는 관계없다 생각했고 개인의 능력만을 중시했기에 공동체가 해체되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었습니다. 생명세계가 갖고 있는 통합적인 기능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무시하고, 전일적인 생명체를 환원할 수 있는 낱개의 요소로만 분석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이렇게 개별화되고 나와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갈리고 대립하며 천륜이라는 가족마저 조그마한 일에도 등을 돌리는 것은 요소론이 지배하는 서구문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없었던 일 들입니다. 나와 이웃, 환경을 포함한 모든 낱 생명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오래된 생각이, 어쩌면 온 생명이 존폐의 기로에서 선 이 시대를 살기 위한 가장 현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가 있어 나도 이곳에 건강하게 있을 수 있음을 안다면 말이지요.

'소식지 발자취 > 살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리는 말> 기계론  (0) 2012.08.02
<살리는 말> 세계관  (0) 2012.05.03
<살리는 말> 역설  (0) 2012.01.31
<살리는 말> 생명운동이 꿈꾸는 미래상  (0) 2011.12.27
<살리는 말> 생명운동  (0) 2011.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