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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살리는 말

<살리는 말> 역설




저도 어릴 때 그랬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옛날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만 나누어 생각합니다. 백설공주는 착한 사람, 계모는 나쁜 사람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백설공주는 하는 말, 생각, 행동이 모두 착하기만 하고 반대로 나쁜 사람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모든 행위가 나쁘기만 할 거라는 생각에 사로 잡혔던 때, 그 시절엔 사랑하신다면서 벌을 세우고 때로는 종아리를 때리기도 하시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해 그 사랑이 거짓이라고 짐짓 얼마나 서러워했는지 모릅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아끼는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었는데 나중에 나이 들고 자식 키워보니 매를 드는 사랑이 더 어렵더군요.
또, 지금은 만인의 만인을 향한 경쟁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말도 있고요.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한데 한시도 편할 날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의식 안에는 자기만이 세상의 중심이고 자기의 생각과 판단만이 정의롭다는 독선이 자리 잡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굳어져서 한 나라의 여론을 지배하면자신과 남을 구별하고 세계를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몰고 가 다른 한 쪽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정의의 심판으로 정당화시키기도 합니다. 나와 남을 대립과 배제의 논리로 파악하는 서구의 합리주의가 끝까지 가면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의 전통적 사고방식에서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음양론이 그 대표적 이론인데요, 모든 자연적 성질을 음양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구분합니다. 세상은 이 두 가지 성질인 음양이 서로 생겨나고 갈등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움직여간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요. 음양의 갈등이나 대립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기운, 창조가 생겨나고 조화를 이루어야 평화롭습니다.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할 수가 없습니다. 낮과 밤, 밝음과 어둠, 휴식과 노동, 건강함과 나약함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우리 삶을 이루어가는 것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나 한사람으로 말하면 겉으로 보기에 내 손으로 먹고 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완벽한 자기완결성을 갖고 다른 사람과 대립하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무수한 연결고리로 다른 사람, 자연과 연결되어 있기에 살아있습니다. 내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은 외부와 나를 끊임없이 드나들면서 생명을 유지시키고 내 안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한 가지 문제를 두고 계속 서로의 생각을 나눕니다. 때로는 내게 꼭 필요한 것일지라도 남에게 양보하기도 하지만 별 소용없는 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같은 일을 두고 형편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나를 놓고 보아도 나는 끊임없이 외부의 영향을 받으며 변하고 발전하고 살아가는 거지요.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이 온전히 옳기 만하고 또는 그르기만 할 수 있겠어요? 이런 모순을 인정하면서 나와 남을 볼 줄 알아야 평화로운 공존, 평화로운 상생이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흑백논리가 아니라 모든 사건과 사실을 역설적으로, 이중적으로 파악하는 논리훈련을 통해서 생명문화운동이 풍부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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