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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살리는 말

<살리는 말> 각비



윤선주 한살림연합 이사


각비(覺非)는 중국 당나라 시인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지금이 옳고 어제가 그른 것을 깨달았다”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는 나이 마흔한 살에 짧은 관직생활을 했는데 고을 수령이 행차하니 맞을 준비를 하라는 공문을 받습니다. 이에 사표를 쓰고 귀향을 결심하며 시를 노래하는데요. 지난 시절 도회에서 권력을 좇아 살며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었던 삶의 허망함과 잘못을 깨닫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동시에 고향의 소박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시인의 전면적인 각성의 마음도 읽혀집니다. 별 생각 없이,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주변 속도에 맞춰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쁘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어 한가하게 산책을 하고 가족과 친구와 함께 생각을 나누기에는 하루가 짧다고 합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떠난 여행에서도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느라 바빠, 떠오르는 해를 지켜보거나 노을이 다 스러진 후 저녁에 샛별이 뜨는 것을 온전히 보기도 어렵습니다. 복잡한 일상을 잠시라도 벗어나 자신을 잘 모시고 충분히 쉬어야 할 휴가에서도 휴대폰과 노트북을 떼어놓지 못하는 우리만큼 그 시대의 도연명도 공직을 수행하느라 바빴던 모양입니다. 생활의 궁핍함을 면해보려 관직에 나갔지만 “쌀 다섯 말에 허리를 굽히랴”하고 떠나온 데는 “이렇게 의미 없는 일로 바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과연 옳은가”라는 고민이 먼저 있었겠지요?

  도연명의 결연한 행동에서 나타나듯이 각비는 단순히 이전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반성이나 후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잘못이라고 깨달은 그 순간부터 사고나 행동의 전면적인 전환을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마치 많이 만들어 마구 쓰고 버리는 현대의 소비문명이 정말 옳고 지속하는 게 가능할까를 생각해보고 그렇지 않다고 깨달은 즉시 물건을 아껴 쓰고 나누어 쓰는 생활양식을 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합성세제가 세척력이 뛰어나지만 자연을 오염시킨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거품이 덜 나 마음이 후련하진 않아도 비누나 천연세제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한살림 운동도 그렇습니다. 요즘 같은 속도와 편리함이 우선인 세상에서 주문 후 3일 만에, 그것도 정해진 날에만 공급을 받고, 배달도 해주지 않는 한살림 매장을 이용해 밥상을 차립니다. 이것이야 말로 밥상살림이 농업살림과 생명살림의 기초가 된다는 깨달음에서 비롯한 혁명적인 생활양식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각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일어나, 온 누리에서 생명살림의 꽃이 필 날을 기대해봅니다.

 

글을 쓴 윤선주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연합 이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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