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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도라지로 살림의 꿈을 키워내다 <더불어세상영농조합> 김영학 ·박숙 생산자 부부


도라지로 살림의 꿈을 키워내다

더불어세상영농조합 김영학·박숙 생산자 부부

 

글·사진 정미희 편집부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는 말이 있다. 좋은 음식은 약과 같은 효능을 낸다는 뜻이다. 소화가 안 될 때 매실차를 마시고, 감기에 걸렸을 때 배를 달여 먹는 것처럼 적절한 음식은 약이 된다. 한살림에 도라지액을 내는 ‘더불어세상영농조합’의 김영학, 박숙 생산자에게 도라지는 몸과 마음을 살린 치유의 음식이다.

서울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365일 쉬는 날 없이 잠도 줄여가며 일을 하던 김영학 씨의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성인 아토피가 생기고, 알레르기성 비염은 날로 심해졌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상해가던 차에 그는 어릴 적 할머니가 재배하시던 도라지를 떠올렸다. 입버릇처럼 도시 생활은 10년만 하고, 시골로 내려가겠노라고 말하던 그는 귀농해 도라지를 키우며 몸과 마음을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정리했다.

귀농할 곳을 찾던 이들은 아무런 연고가 없던 충북 청원에 운명처럼 자리를 잡고, 도라지 농사를 시작했다. “도라지 농사는 풀만 잘 뽑으면 된다고 해서 초보 농사꾼에게는 쉽게 들렸죠.” 두 사람 모두 농사 경험이 없었기에 풀이라면 한 해 한두 번 뽑아주면 되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16,528㎡의 도라지밭에는 사계절 각기 다른 풀이 났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한여름에는 쏟아지는 땡볕을 짊어지고, 추우면 옷을 여미며 잡초를 뽑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며 남자가 제초제를 뿌릴 일이지 잡초를 뽑고 있다고 비웃으며 3년도 못 견디고 나갈 거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부부는 처음 귀농할 때 마음먹은 그대로 친환경 농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 몸도 살리고, 땅도 살리는 건강한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대로 묵묵히 잡초와 싸웠다. 그러다 고안해낸 방법이 가위 제초다. 참깨씨보다 작은 도라지씨를 뿌리고 싹이 틀 때까지 땅이 들썩이면 안 되니 풀의 생장점을 가위로 잘라내는 것이다. 가위는 이듬해 도라지의 꽃대가 올라오면 꽃대를 자르는데도 쓰인다. 뿌리로 영양이 가 튼실한 도라지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한 해 농사에 20개 정도의 가위를 쓴다. 눈물과 땀으로 정성 들여 키워 3년 만에 도라지를 수확했지만, 판로가 문제였다.


이들 부부가 무엇보다 보람되게 생각하는 것은 마을이 변화한 점이다. 마을사람들도 도라지에 관심을 갖고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도라지로 인해 마을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어서 보람을 느껴요. 혼자만 잘 살려고 시작한 농사가 아니니까요. 도라지 작목반을 시작해 12명이 함께 도라지 농사를 짓고 있어요.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30대 후반, 아무런 연고 없이 이곳 청원에 들어와 도라지를 키워낸 이 부부의 무모한 도전은 이웃과 더불어 아름답게 꽃을 피워가고 있다. 막상 생도라지를 출하하려고 하니 대개들 잔뿌리가 거의 없고, 모양이 예쁜 것들만 원했다. 판매할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았다. 판로를 찾아 직접 서울 아파트 장터에도 나가봤지만 녹록치 않았다. 생각 끝에 작은 중탕기와 포장기를 들여놓고 도라지액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비단 도라지즙을 짜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예로부터 기침이나 천식 등에 도움을 주는 음식으로 알려진 도라지로 목 건강을 돕는 건강음료를 만들어 보기로 하고 책을 찾아가며 배합 재료들을 고민했다. 부부는 도라지액을 가공할 때도 모든 재료를 국내산 친환경농산물로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직접 재배한 생도라지 2년근 외에 배, 대추, 생강, 은행, 진피, 모과, 유근피, 감초 등을 모두 국내산으로 구해 사용했다. 아이들도 먹기 좋은 도라지액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재료의 배합비율, 달이는 시간, 넣는 재료 등을 고민하며 한의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하면서 연구를 거듭한 지 1년여 만에 지금 한살림에 내고 있는 것과 사양이 같은 도라지액이 탄생했다.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하고, 목을 많이 쓰는 보험설계사나 학교 선생님들께 찾아다니면서 판로를 개척하다 2008년 가을부터 ‘도라지세상’이라는 이름으로 한살림청주에서부터 시작해 한살림대전, 그리고 한살림충주제천에도 도라지액을 내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농진청의 여성창업자금을 지원받게 되어 공장 시설 등을 개선하고, 한살림생산자회원들과 소비자회원 53명이 모여 더불어세상영농조합을 결성할 수 있었다. 작년 7월부터는 도라지액이 한살림연합 물품으로 공급되면서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 연간 2.3톤의 도라지액을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