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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물품 써보니 어때요?/독자가 쓰는 사연

[내 인생의 이 물품] 태어나서 한 번도 안 써본 것?

태어나서 한 번도 안 써본 것?

 

조슬기 한살림서울 조합원

 

“슬기, 면생리대 한 번도 안 써봤어? 되게 좋은데!” ‘사직동 그 가게(티베트 난민과 연대하는 작은 카페)’ 친구와 함께 좁은 부엌에서 일할 때는 요즘 사는 이야기부터 먹을 것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까지 수다가 가득하다. ‘나는 왜 면생리대를 안 써봤지?’ 생각하니 신기한 일이다. 대학교 때 녹색살림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친구는 없었지만 여성주의 활동을 함께 하는 친구는 많았다. ‘대안생리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알록달록 오색빛깔 천들은 늘 주위에 있었다. 친구들은 생리대가 부끄러운 게 아니니 일부러 남학생이 있는 곳, 사람이 많은 곳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리대 키트를 꺼내놓고 바느질을 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의 세미나를 하고 그런 책을 읽고 그런 글을 썼으면서 왜 면생리대는 한 번도 안 썼담?

무언가를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너무 하기 어려운 일이거나, 필요를 못 느끼는 일이거나. “면생리대 한 번 쓰면 다시 비닐생리대 쓰고 싶지 않을 걸.” “그래? 그 정도야?” 초경 이후 슈퍼에서 파는 ‘일반생리대’만을 써본 나는 그게 불편한 줄 몰랐다. 월경 때 아랫도리가 덥고 답답하고 냄새도 나는 걸 생리대 탓이라 생각 못하고 월경 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가 아니라 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어!” 사직동 그 가게에서 면생리대 워크숍을 한 적도 있단다. 강사는 젊은 분이었는데 그분은 태어나 한 번도 비닐생리대를 써본 적이 없고. 초경 때 할머니가 면생리대를 건네주셨단다. 태어나서 한 번도 면생리대 써본 적 없는 나와 반대인 그 분, 재미있기도 했지만 나와 같이 살아 온 사람들이 많겠다 싶어 생각이 깊어졌다. 뭐가 더 유별난 일인지, 뭐가 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인지, 내 평범한 친구들은 고기 먹지 않는 내가 신기하다지만 ‘평범’과 ‘정상’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중학교 때 유명한 미국 브랜드 생리대 회사에서 판촉활동으로 성교육 강사를 보낸 적이 있다. 여중생들에게 전교 방송 스피커로 설파한 그 성교육이 엉터리임을 두말할 것 없지만 - 그는 입담 좋은 영업사원이었으리라, 재미는 있었다 - 우리에게 큰 상흔(?)을 입힌 말은 이거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생리대를 갈아야 해요!” 하루 한 번 샤워를 하는 게 상식이듯, 어 원래 그런 건가보다 우리는 믿었다. 그러지 않는 자신이 더러운 마냥. 생리 양, 생리 때 느끼는 예민함과 통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우리는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저 비밀스럽게 생리대를 사고, 장롱 속에 보관하고, 가끔 못 챙겼을 때는 입술을 오므리고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너 생리대 있어?” 묻는 법만 배웠을 뿐. 현대에서 그저 ‘생리대’라 부르는 기성품 비닐생리대가 여자 몸 가장 예민한 곳에 얼마나 나쁜 유해물질을 흩뿌려대는 것인지 담론을 대놓고 하기 어려웠으리라.

친구의 생활밀착형 면생리대 찬양이 끝나고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걸 쓰면 생리통도, 냄새도 사라진다고? 월경하는 게 전혀 싫은 일이 아니라고? 다 피부가 숨을 못 쉬게 하는 비닐생리대 탓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고?’ 그날부터 눈을 크게 뜨고 면생리대 파는 가게가 없나 둘러봤다. 이럴 수가. 동대문에서 천을 끊으면 쉬운 일이겠지만 멀리 일부러 가지 않고 왔다 갔다하는 내 생활동선 안에서 찾으려 하니 없었다. 슈퍼에도 소품 가게에도 있을 리가 없었다.

무독성 제품이나 유기농산물에 큰 관심이 없던 새언니가 자꾸 주위에서 한살림 이야기를 듣더니 조합원이 되었다. 같이 사는 나도 조합원 가족으로 한살림 길음매장에 들른 어느 날, ‘앗, 있다 있어!’ 내 집 반경 25km내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못 찾았던 그 귀한 물건이 여기 툭 놓여있던 것이다. 그것도 친구에게 들었듯 ‘무형광·무표백 순면, 기저귀처럼 접어쓰는 천, 이름도 예쁜 달맞이’ 딱 그게 있었다. ‘그래, 한살림에서는 몸에 좋은 것, 그러면서 쓰기 편한 것을 만드는구나. 오랫동안 이 살림을 꾸려왔으니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겠지’ 한살림에 대한 첫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