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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2014/06/16 농사가 좋아! 사람 만나는 건 더 좋고 / 이명숙 청주연합회 초정공동체 생산자

농사가 좋아! 사람 만나는 건 더 좋고

이명숙 청주연합회 초정공동체 생산자

글·사진 석보경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정책기획부




“일 년이면 100일은 나돌아 다니는 것 가텨~~” 충청도 특유의 느긋한 억양과 구수한 웃음소리가 하우스 안에 가득 찬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여성위원장을 맡아 각종 회의와 모임에 참여하느라 바쁜 청주연합회 초정공동체 이명숙 생산자. 평범한 농부이자 한 사람의 아내로 살다가 사람들 만나서 어울리고, 뭔가 배우는것이 좋아 다니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단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부담의 문턱에서 머뭇거리며 산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토마토와 양상추를 함께 키우던 비닐하우스에서 양상추가 모두 녹아내렸다. 토마토는 열대작물이라 따뜻하게 해줘야 하고, 양상추는 내한성 작물이라 온도를 낮춰야 하는데 바쁘다 보니 잠깐 하우스 관리하는 걸 놓쳤다. ‘이거 누구 작품이냐?’고 주변에서 반 놀림으로 하는 말도 듣고, 약속한 출하량을 지키지 못해 소비자들 에게도 미안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이 더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며 농사는 자기가 더 신경 쓸 테니 밖에 나가서 열심히 활동하라고 묵묵히 배려해 주는 남편 나진찬 생산자의 외조가 큰 힘이 됐다. 4~5시간만 자도 새벽에 거뜬히 일어나 밀린 집안 일을 해치우고, 농사일도 감당하는 것은 본디 건강 체질이기도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도 한몫을 한다. 남편 나진찬 생산자는 한살림 생산자가 되기 전에는 청주 시내에서 건축업에 종사했다. 그러면서도 주말마다 고향인 초정리로 농사를 지으러 다니곤 했다. 그러던 중 1994년 농사가 소원이라며 고향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큰아들은 자라나서 부모님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짓겠다고 나선 지 벌써 6년이 되었다. 36세 큰아들 나기창 생산자는 현재 초정공동체 대표를 맡아 젊은 일꾼답게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자식이 힘든 농사를 선택할 때 반대도 하고, 속도 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들을 후계자로 둔 성공한 농업인’ 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다. 



이들 부부는 귀농한 뒤 처음에는 관행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나진찬 생산자가 농약중독으로 쓰러지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 유기농업으로 전환한 뒤 2004년 한살림과 인연을 맺었다. 토마토, 오이, 깻잎, 양상추, 마 등이 주 작목이다. 그이는 돈이 목적이라면 한살림을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다. 관행농을 할 때가 수입은 더 좋았다고 한다. 한살림 생산자라면 ‘먼저 삶이 유기농이 되어 자연환경을 지키고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있다’고 했다. “여성 생산자들이 가진 섬세함과 주변을 아우르는 장점을 살려서 밖으로 나와 즐겁게 활동했으면 좋겠어요.공동체 회의에서도 부부가 참여하면 훨씬 소통이 잘 되고, 일의 진행속도도 빨라요.” 처음 나서기가 어렵지 일단 나와서 활동을 시작하면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 한다. 물론 남자 생산자들이 보수적인 생각을 버리고 아내가 활동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지해줘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른 지역에 있는 여성 생산자 대표들과 자주 교류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는 그. 어느덧 이야기를 끝내고 인사를 나누려니 성큼성큼 앞장서 새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 하나를 따가지고 와 건네준다. 손톱 밑에 끼인 흙과 손마디가 굵어진 손가락. ‘바깥으로 나돌아 농사도 살림도 엉망이야.’ 했지만, 손은 정직하다. 토마토를건네는 손 가득 일하는 삶과 생산의 정직한 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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