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일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일

전남 고흥 채진희 생산자

 

 정미희·사진 문재형 편집부

 

빡빡한 도시 생활에 봄이 주는 활력은 놀랍다. 경작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더라도 돋아나는 새싹과 만개한 봄꽃 앞에서 설레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한 뼘 땅을 딛기도 여의치 않은 콘크리트 숲에 살아도 여전히 우리가 자연과 이어져있다는 것을 이 계절이 일깨워준다. 봄이 되면 농사꾼이 되길 갈망하다 한살림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된 사람이 있다. 전남 고흥에서 고사리 농사를 짓는 채진희 생산자를 만났다.

 

전남 고흥군 남양면 망주산 자락에는 마치 아기가 주먹 쥔 손을 높이 들어 올린 것처럼 돋아난 햇고사리들이 지천이다. 고사리를 꺾느라 분주한 손길들이 갓 돋아난 어린 순을 밟을까 새색시 걸음으로 걷는다. 고사리 꺾는 재미에 신명이 나지만 허리를 한 번씩 굽혔다 펼 때마다 절로 신음소리가 나는 고된 작업이다. 봄철에 채취한 고사리는 잎이 부드럽고, 대가 순하며, 고유의 향이 있어 먹기에 가장 좋다. 이렇게 4월 초순부터 시작된 고사리 수확은 6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예쁘게들 돋았지요.” 채진희 생산자가 바쁘게 손을 놀리며 하는 말이다. 얼굴에는 장성한 자식을 대견스레 바라보듯 뿌듯한 미소가 어려 있다.

그가 한살림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 일이다. “동네에서 한살림 공급차량을 봤어요. 이런 것도 있었구나, 왜 몰랐을까 하며 그 길로 조합원이 됐지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살 것이 없다, 먹일 것이 없다’ 생각하며 먹을거리를 고민하던 터에 한살림을 만났다. 그 후로 집 근처 쌍문매장을 매일 왔다갔다하며 열심히 한살림을 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생산지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다녔다. “생산지에 갈 때마다 늘 ‘나도 한살림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 생산자들 만나며 보고 들은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는 물품위원회, 환경위원회, 매장책임자 등의 활동을 하다 한살림성남용인이 창립되기 이전, 한살림서울 분당지부에서 지부장을 지냈다. “저처럼 다양하게 한살림 활동을 해본 사람도 없을 거예요”하며 소리내 웃었다.

농사짓는 삶을 꿈꿨지만, 하루아침에 가족 모두가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농사 관련된 일을 하며 때를 기다리다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2007년 그가 먼저 이곳에 내려왔다. 수도권과 거리가 멀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이 고향이고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가꿔놓은 논과 밭이 아니라 망주산 자락에 터를 잡은 것은 농사만이 아니라 자연속의 뭇 생명들과 더불어 사는 농장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내려온 첫 해부터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를 보며 마을 분들은 제초제와 농약의 필요성을 설득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을 분들이 여자 혼자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실 때마다 여자니까 된다고 했죠.” 유기 퇴비로 부지런히 땅심 기르고, 땡볕에서 풀을 매며 점점 농부가 되어갔다. 고사리는 산에서 친환경 재배를 짓기에 적합하겠다 싶어 시작한 작물이다.

바닥을 깊게 파고 고사리 종근을 심은 뒤 다다음해부터 수확을 시작했다. 퇴비는 봄철 수확 전과 수확 후 6월 말에서 7월 초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준다. 풀은 1년에 다섯 차례 정도 매주어야 한다. 수확 철에는 3일에 한 번씩 고사리를 꺾어 찜통에 5분 정도 찐 뒤 햇볕에 하루 정도 말려 70g씩 소포장해 한살림에 내고 있다. 혼자서는 이 일을 다 감당하기 어려워 때마다 동네에서 일손을 찾지만, 다들 연세 많은 노인들뿐이라 쉽지가 않다. “저는 제가 농사지은 걸 맛있게 먹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 제일 행복해요. 작년에 수없이 들었지만, 그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요. 사실 제가 한 일이라고 해봐야 원칙을 지키면서 자연이 하는 일을 거든 것뿐이지만요.”

그는 소비자일 때도 농산물의 소중함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농사를 짓고 난 뒤 생산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다시 깊어졌다고 했다. 소비자조합원들이 자신의 지은 농산물의 가치를 알고 먹어줬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다고 했다. “한살림에서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지면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간다는 말을 하잖아요. 농사를 지으며 그 말의 의미가 더 절실하게 이해됩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로 묶여있는 존재예요. 하나지요.”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건 행운인데 자신이 그렇다고 했다. 채진희 생산자. 행복한 기운을 가득 품고 그의 손끝을 통해 자라는 고사리가 있어 참 고맙다. 도시와 농촌이 마음과 마음으로 닿을 수 있어서 말이다.

 


 

 

 

 

Posted by 한살림연합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