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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살림의 기쁨

다음 세대를 위해 자발적 불편함을 선택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자발적 불편함을 선택하다

한살림하는 기쁨 I 한살림운동의 가치-생활운동 ③

 

휴대하기 편리한 휴지, 물휴지, 물에 적셔 쓰는 휴지, 빨아 쓰는 종이 행주…. 요즘은 생활 이곳저곳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휴지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그럴수록 톡 뽑아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을 마다하고 여전히 손수건이나 행주를 쓰는 사람을 보면 반갑지요. 물건을 아끼는 마음도 크겠지만, 휴지가 무엇으로부터, 어떤 공정을 거쳐 내 앞에 놓였는지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물론, 저희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는 누구나 윗옷 가슴께에 손수건을 꽂고 다녔지요. 초등학교를 떠올리면 으레 흰 손수건을 이름표와 나란히 달고 줄 맞춰 섰던 풍경이 그려집니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도 쉽게 떠오르는 선물이 손수건이어서 아끼는 이가 손수건을 건네면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했지요. 이를테면 아주 우아한 이별 선언이라고 할까요

사실, 저에게는 한살림 휴지가 특별합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울면 달래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고 때가 되면 한 상에서 같이 먹기도 했던, 지금은 잘 자란 청년을 보는 듯한 자랑스러움이 있습니다. 처음에 제가 만난 한살림 휴지는 와이셔츠 상자로 만든 것이었어요. “부엌에서 세상을 본다”라고 쓰여 있는 거무스레하고 한 겹인 불편한 휴지를 선택한 것은 휴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공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뽀얗고 부드러운 휴지의 원료가 열대우림의 아름드리나무라는 것, 그들 덕분에 지구의 대기가 유지된다는 것, 공정에 어마어마한 물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화학약품이 섞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온 우주의 모든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온전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터에 지구의 허파를 희생시키며 만든 휴지보다 재생 휴지라도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휴지 없는 시대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마당에 대안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최고급의 펄프를 사용해 만든 우유갑을 재활용한 뽀얗고 힘 있는 휴지가 공급되었지요. 조합원들은 우유갑을 모으려고 자기 집을 반상회 장소로 내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모은 우유갑을 깨끗이 헹군 뒤 그 물은 다시 화분에 주어 수질오염도 줄이고 식물도 튼튼하게 키우는 두 가지 효과를 보기도 했어요. 헹군 우유갑을 가위로 잘라 펴서 햇빛에 바짝 말린 뒤 공급 실무자에게 건넬 때는 그 무게만큼 보람이 있었답니다. 한동안 모든 마을 모임에서 형광표백제가 들어간 시중의 휴지와 한살림 휴지를 비교하곤 했답니다. 수요가 늘어 조합원들이 모아 주는 우유갑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대다수의 필요량을 수입 우유갑으로 대체했지만, 여전히 한살림 휴지는 특별합니다. 그래서 아껴 쓰고, 될 수 있으면 덜 쓰려고 손수건을 식탁에 올렸답니다.

우리는 자칫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든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인지 삶은 소비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소비하기 전에 어떻게 생산하고 다 쓴 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버리느냐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큰 데도요. 한 번만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다시 쓸 수 있다면 한정된 지구 자원을 후손과 함께 오래도록 나누어 쓸 수 있겠지요? 폐식용유를 모아 비누를 만들거나 불편해도 꾸준히 병을 재사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우리에게 지금 당장 편하다고 쉽게 만들어 쓰고 버리는 일은 현재 우리의 이웃인 자연에는 물론 다가올 미래 세대에게도 미안한 일이니까요.

글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