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산지에서 온 소식/살리는 이

하늘이 내린 곤충, 땅이 살린 나무 한살림 누에가루, 뽕잎가루

하늘이 내린 곤충,

땅이 살린 나무

한살림 누에가루, 뽕잎가루

조영준, 홍석녀 고니골농장 생산자

1984년 어느 겨울날이었다. 4대째 이어 온 양잠업이 값싼 중국 제품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만 가던 때, 조영준 생산자는 이를 악물고 2만여 주나 되는 뽕나무에 제초제를 네다섯 번 연이어 뿌렸다. 다른 이들처럼 잡곡농사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뿐이었다. 하지만 다음 해 8월, 그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썩어 말라버렸을 줄만 알았던 뽕나무가 멀쩡히 살아 고고한 생명력을 주위에 흩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그의 삶이 변했다. 뽕나무와 누에와의 평생 인연이 시작됐다.

조영준 생산자는 걸음을 떼기 시작한 때부터 누에똥을 거르는 잠망을 들고 다니며 아버지 일을 도왔다. 그때부터 자연스레 누에 사육이 무엇보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임을 알았다. “누에는 유난히 깔끔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합니다. 환경 피해나 냄새에 민감해서 화장을 하거나 찌개 냄새, 밥 냄새가 몸에 밴 사람은 사육장에 발을 디딜 수도 없거든요. 그뿐인가요. 먹이로 먹는 신선한 뽕잎은 2시간마다 갈아 주어야 해요.”

그는 제초제에 중독되어 한참을 고생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하면 할수록 느리지만 생명력 가득한 양잠업에 이끌렸다. 1999년부터 한살림원주 조합원으로 활동한 이력도 그의 생각에 믿음을 보태 주었다. 2000년부터 3년간 무농약 인증 단계를 밟아 가며 영농일지를 한 자 한 자 써내려 갔다. 마침내 2003년, 뽕잎가루와 뽕잎환을 시작으로 누에가루와 누에환까지 한살림에 양잠산물을 공급하게 되었다.

조영준, 홍석녀 생산자는 한살림의 엄격하고 치밀한 기준이 지금의 고니골농장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초기 고니골농장은 10평짜리 공간에서 제조가공은 물론 포장까지 감당하고 있었다. “한살림에서 해썹(HACCP,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서, 원료가 들어오는 곳과 완제품이 나가는 곳을 구분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비용이 드는 일이라 망설였지만, 한살림처럼 믿음을 주는 생활협동조합은 없다는 생각에 실행할 수 있었죠.”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고니골농장은 3만 평에 이르는 부지에 제조가공실, 포장실, 완제품보관실 등을 건물별로 구비하고 있고, 양잠업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위해 귀농마을을 계획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매년 소득의 5%를 고객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무료로 개최하는 고니골축제도 어느새 26회째를 맞았다.

그들은 뽕나무와 누에가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먹을거리라고 믿는다. 혈압을 내리는 가지, 중풍을 치료하는 줄기, 탈모증을 완화하는 뿌리 등 어디 하나 버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누에 역시 그 자체로 고단백 식품인 것은 물론 누에똥까지 아토피에 효과적으로 쓰인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 생명과 자연이 순환하고 상생하는 기본 논리 아닐까.

옛 사람들은 누에를 천충(天蟲)이라 불렀다 한다. 하늘에서 내린 곤충이라는 뜻이다. 그 곤충을 기르기 위해 뽕나무는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하늘과 땅과 사람을 잇는 조영준, 홍석녀 생산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