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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물품 써보니 어때요?/독자가 쓰는 사연

[잊지지 않는 밥 한 그릇] 지친 마음 달래준 밥상의 기억

 

지친 마음 달래준 밥상의 기억

 

정수정 한살림고양파주 조합원

 

 

밥 한 그릇

나름 학문에 큰 뜻을 품고 일찌감치 지방 소도시로 떠난 유학생활, 고등학교 3년 질풍노도의
시간을 나는 무허가 상가주택의 맨 끄트머리 구석진 방에서 고스란히 앓으며 보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된통 걸리던 감기몸살, 어느 날 혼자서 끙끙거리는 모습을 보고 간 고향 친구 지연이가 집에 가서 그 이야길 꺼냈나 봅니다. 지연이 엄마가 전화를 걸어오셨지요.
“수정아,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아줌마가 해가지고 갈게.”
그때의 나직하고 따듯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대로 밥알을 삼키지도 못하고 있던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김치찌개요” 대답했습니다. 그날 저녁 지연이 엄마는 하얀 쌀밥에 김치찌개를 끓여 직접 내 방으로 오셨고,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던 옷가지며 책까지 말끔히 치워주고 가셨습니다. 김치찌개와 밥을 우걱우걱 퍼먹으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감기가 말끔히 나아버린 것은 말할 나위 없었지요.

 

밥 두 그릇

그저 젊음이 버거워 마냥 방황하던 이십대 중반의 초여름, 아침 일찍 일어나 무조건 집을 나섰어요.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친구 순영이의 첫 발령지였던 경기도 이천의 한 중학교 이름뿐. 휴대전화도 없이 어렴풋한 기억을 애써 떠올리며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해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 겨우 학교를 찾아낸 시간은 그림자가 한가롭게 누운 늦은 오후였어요.
교실 창문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마침 수업 중이던 친구를 찾아냈고, 담벼락 아래 장미꽃 덩굴을 구경하며 친구의 퇴근시간을 기다렸지요. 그날 우린 시골의 허름한 술집에서 맥주를 실컷 마시고도 모자라 친구의 자취방에 누워 밤새 이야기를 했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친구는 벌써 출근을 한 후였어요.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니 머리맡에 놓여있는 작은 밥상과 양말 두 켤레, 그 위에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이 눈에 띕니다.
‘수정아, 밥 꼭 챙겨먹고 가. 국은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 있으니 데워서 먹고, 양말은 둘 중에서 맘에 드는 걸로 골라 신고 가.’
속 쓰린 아침 친구의 집에서 혼자 먹는 밥이 어찌 그리 달았을까요. 나는 편지와 양말 두 켤레를 번갈아 쳐다보며 자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밥 세 그릇

결혼을 하고, 밥을 얻어먹는 일보다 밥을 차려 가족을 먹여야 하는 날들이 많아질 즈음 문
득 지쳐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 나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한 허망함에 시달릴 즈음, 내게 한살림을 알게 해 준 한 선배가 있습니다. 10년 전 직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가정과 일터를 오가느라 분주한 선배의 모습은 한없이 커 보이긴 했지만 그만큼 숨 가쁘게 느껴지지도 했습니다.
“수정 씨, 집으로 밥 한 번 먹으러 와.” 입버릇처럼 하던 선배의 말이 그제야 떠올랐어요.
처음 찾아간 선배의 집에서 그가 손수 준비한 따듯한 밥상에 마주앉았지요. 작은 무쇠가마솥에 갓 지은 잡곡밥,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 말갛게 끓인 다시마 북엇국, 대낮의 막걸리 한 잔까지. 투박한 질그릇에 담긴 점심 밥상은 고향집 엄마의 향기와 다르지 않았어요. 그 후로 지친 마음을 둘 데 없어 심란할 때면 슬그머니 선배의 밥상을 찾는 염치없는 후배가 되어버렸지요.


이제, 마음이 힘든 누군가를 위해 내가 손수 밥상을 준비할 때가 된 것 같네요. 내가 차린
작은 밥상도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쉬어갈 수 있게 해준다면 한없이 기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