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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자취/한살림 함께걸음

땅도 살리고 가축도 건강하게, 한살림 유기축산 확산된다

박현숙 편집부

고기가 흔해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고기가 있어야 제대로 차린 밥상이라는 생각도 은연중에 커졌다. 턱없이 늘어난 고기 수요를 감당하자니 소 돼지 닭을 밀집시켜놓고 단기간에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공장식 축산’이 불가피해졌다. 원료를 투입해 물건을 찍어내듯 더 많이, 더 빠른 생산을 위해 수입사료를 먹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집단 사육으로 가축의 스트레가 심해지고 질병 내성이 떨어진 가축을 살리자니 항생제를, 빨리키워 시장에 내자니 성장촉진제를 먹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더 이상 그 가축이 자라는 곳은 생명활동의 장이 아니라 ‘공장’이므로.


수입 사료들은 많게는 수만 킬로미터씩 이동하면서 탄소를 배출한 끝에 우리나라 가축의 사료통에 도착한 것들이다. 비교적 값싼 수입곡물을 사올 수 있었던 2010년 7월까지만 해도 그래도 사정이 나았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파동 등으로 세계 곡물시장이 요동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밀은 90%, 옥수수 85%, 대두 가격이 47%이상 값이 치솟았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등 주요 곡물 생산지를 덮친 홍수와 가뭄과 산불 등으로 인한 가격 급등만이 아니라 수급자체가 불안정해졌다. 세계3대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는 지난해 폭염과 가뭄으로 수확량이 급감하자 올 6월 30일까지 밀, 보리, 옥수 등의 수출을 중단 시켰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곡물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다. 고작 밀 1%, 옥수수 1.0%, 콩류 8.4% 정도만 자급하고 있을 뿐이다. 세계 곡물 시장이 출렁이는 것은 우리밥상이 그만큼 위태로운 기반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한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농촌마을들에서는 집집마다 1~2마리씩 소나 돼지를 길렀다. 여름에는 꼴을 베어 먹이고 겨울에는 콩깍지, 볏짚 등으로 쇠죽을 끓이곤 했다. 외양간에서 바로 나오는 소똥을 논밭에 거름이 되었다. 가축을 키우는 일과 논밭 농사가 자연스레 순환되었고 암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그걸 밑천으로 해서 자녀들 대학등록금이나 집안 대소사 비용으로 충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장형 축산’에서는 더 이상 이런 광경을 볼 수 없다. 돈을 주고 사지 않을 도리가 없는 수입 사료와 약품, 구제역 파동에서 드러난 것처럼, 취약해진 가축질병 면역력. 신음하고 있는 것은 가축과 축산농민들 만이 아니다. 순환고리가 끊긴 논밭농사와 가축, 산업의 한 축으로 휘말린 순간 끝없이 투자와 수익 창출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시스템이 오늘날 농촌이 처한 현실이다.



신음하는 가축들, 뒤틀린 밥상을 되살릴 대안은 없을까? 한살림이 시작합니다.


농민들과 도시소비자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건강하게 가축도 기르고 논밭농사와 순환고리도 되살리기 위해 한살림은 오랫동안 땀을 쏟아왔다. 충남 아산지역 한살림생산자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자원 순환형 친환경 지역 농업’이라는 이름 아래 유기농 논밭농사와 유기축산을 위해 노력한 끝에 2010년 11월부터 ‘유기한우’를 조합원들의 밥상에 올릴 수 있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통방식대로 소규모 축산과 논밭 농사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토종축산농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산지역뿐만 아니라 강원도 홍천, 경북 울진, 제주도지역에서도 소규모 국산사료 한우 시범 사육이 시작되었다. 농촌 생산자들만이 아니라 도시지역 소비자들도 이 뜻 깊은 송아지 입식 자금을 함께 모아 땅도 살리고 건강한 축산도 가능하게 하는 대안 축산의 길에 참여하기로 하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5월 27일 제주도에 있는 한울공동체에서는 구제역사태 때문에 미루고 있던 ‘국산사료 한우 도농교류를 위한 첫 만남’이 열렸다. 한살림에 감귤류와 겨울채소, 잡곡류를 주로 내고 있는 이 마을에서는 농사 부산물을 먹여 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한살림성남용인 소비자들이 송아지입식자금을 모으는데 참여하면서 방문 교류도 하고 함께 소를 키우면서 땅도 살리고 나중에 건강한 고기도 나누는 계획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제주시에서 얼마 멀지 않은 신촌리 백경호 생산자의 보리밭에는 수확을 앞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보리를 수확하고 나면 보리기울과 보릿대 등이 소 사료가 될 것이다. 겨울에 한살림에 물품으로 내지 못한 감귤 등이 그렇게 되듯 말이다. 소를 키우면서 이 마을에 보리농사가 되살아나고 있는 점도 뜻깊어 보였다. 약 40개월 정도까지 다 크고 나면 고기로 내기로 약정된 이 마을의 소들은 보리겨, 사료용으로 재배한 옥수수, 귀리 등을 혼합한 자가사료를 먹으면서 건강하게 자라

[사진 설명] 국산사료 자급을 위해 재배하는 보리(왼쪽)와 옥수수(오른쪽)

고 있었다. 물론 소똥은 퇴비가 되어 대파, 옥수수 밭을 기름지게 만들면서 순환되고 있었다. 백경호 생산자는 대개의 농민들이 식량작물보다 이른바 ‘돈이 되는’ 경제작물에만 집중되면서 전통농업이 무너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보리, 옥수수를 심는 농가가 계속 감소한 것도 당장 내다파는 일만 생각하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다. 그러나 논밭 농사와의 순환, 도시와의 협력까지 생각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울공동체 대표인 송태문 생산자의 축사는 아름다운 숲길을 한참 걸어가야 나오는 외진 들판에 있었다. 귀리가 심어진 넓은 밭을 끼고 있는 방목에 가까운 운동장에서 소들이 여유롭게 거니는 풍경은 평화로워 보였다. 자식 같은 소들을 잘 먹이기 위해 이탈리안 글라스, 옥수수, 귀리 등을 재배하면서 국산사료 한우를 늘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희망이 느껴졌다. 지난 겨울에 겪은 몸서리치는 구제역파동과 살처분소동에 비하면 얼마나 안심이 되는 광경인가 싶기도 했다.


한살림은 회원생협과 생산공동체가 협력해 함께 가축도 키우고 땅도 기름지게 하는 프로그램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가려고 한다. 도시소비자가 응원하면서 입식한 송아지들이 유기농을 고집하는 한살림생산자들 손으로 길러지고, 이 과정에서 낳는 송아지 두 세 마리는 생산자가 양육비 명목으로 갖고 소임을 다 한 어미소는 비육기를 거쳐 한살림 소비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마블링’이 좋은 소위 ‘1등급 고기’만을 찾는 시장체계에 대한 대안.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은 조금 부족할 수는 있어도 그 한 점에 담긴 가치와 의미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깊은 한살림 축산. 이제 더 많은 지역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