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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물품 써보니 어때요?/독자가 쓰는 사연

[잊히지 않는 밥 한 그릇] 엄마의 사랑 가득했던 생일상

엄마의 사랑 가득했던 생일상


안금모 한살림서울 조합원


내 고향은 부산이다. 바닷가라 해산물이 풍성하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해산물을 양껏 먹을 수는 없었지만 집 앞 시장에 가면 생선이 항상 즐비했다. 근처 어묵 공장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어묵도 생각난다.

그 시절, 생일날에는 그나마 맛있는 음식을 배 불리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은 생일을 무척 기다렸었다. 하지만 내 생일은 음력 8월 18일로 추석 쇠고 3일 뒤라 제대로 생일상을 받지 못 했다. 어린 맘에 추석 때 남은 음식으로 대충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게 싫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푸념 섞인 말투로 ‘왜 내 생일은 추석 뒤야? 생일상도 제대로 못 얻어먹게….’이렇게 말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내 말이 맘에 걸리셨는지, 그 다음해부터인가 추석 장을 볼 때면 큰 조기를 한 마리 더 사서 따로 빼 놓았다. 그리고 내 생일에 미역국과 함께 조기를 쪄서 상을 차려주셨다.

먹성 좋은 7남매에 할머니까지 모시고 살던 우리 집은 먹을 게 풍족하지 못했다. 아무리 바닷가라 생선이 싸도 열 식구 입을 감당하기에 엄마는 늘 벅찼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섯 째인 나를 위해 큰 조기를 준비해주셨으니, 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수수팥밥에 조기를 놓아 주시며 ‘우리 딸, 생일 제대로 못 챙겨 먹는다고 섭섭했지?’하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난다. 엄마는 곁에서 조기 살을 하나하나 발라주시며 어서 먹으라고 하시고는 조기 대가리를 씹어 드셨다. “엄마, 맛있는 살은 왜 안 먹고 왜 쓴 부위를 먹어?” 이렇게 물우면 “이 부분이 맛있는 부분이야” 대답하셨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이 진심인 줄 알았다. 혼자서 야들야들한 조기 살을 맛있게 먹으며 엄마 입맛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귀한 생선을 구우면 내 입에 흰 살 넣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 입에 먼저 넣어 주고 나는 대가리 부분에 조금 붙은 살을 먹곤 한다. 그러다보면 그 옛날 내 생일상 앞에서 엄마가 생선 대가리를 드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떠올리면 콧끝이 시큰해진다.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엄마가 차려주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수팥밥과 큰 조기가 놓여 있는 생일상이 잊히지 않는다. 7남매 중 다섯째였지만 나도 엄마에게 귀한 자식이었음을 느끼게 해 준, 엄마의 사랑 가득한 고마운 생일상.